그룹명/수필 방

맨방 / 추선희

테오리아2 2022. 9. 2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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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를 다녀왔다. 그 집에는 빈 벽이 거의 없었다. 장식가구가 많았고 가구가 없는 벽 앞에는 분재와 도자기가 도열해있고 조명이 가족사진과 그림을 비춰주고 있었다. 터질 듯 꾸며진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니 마음이 산만하고 묵직하다.

몇 해 전 제주도에 갔을 적에 사진작가 고 김영갑의 갤러리, 두모악에 들른 적이 있다. 하릴없이 쏘다니다 우연히 팻말을 보게 되어 찾아간 것이다. 한때 시골 분교였던 갤러리는 아담했다. 틀만 간직한 채 개조된 건물은 수수했고 작은 운동장은 나무와 조각품들로 아기자기했다. 말년에 루게릭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손수 정원을 가꾸었고 유골도 그곳에 뿌려졌다고 한다.

갤러리는 여느 갤러리와 다르게 천장이 낮고 바닥이 마루였다. 그 덕분에 방안 마냥 포근했다. 드문드문 걸려있는 사진에서는 회화 분위기가 났다. 가로가 유난히 긴 사진틀 안에서 제주의 바람과 안개가 아득하고 몽환적이었다. 사진틀 안에 갇혀 있는 바람과 안개가 밖으로 쏟아질 듯 생생했다. 렌즈에 눈을 맞춘 채 그가 견뎌내었을 바람이 불어오고 그때 그 안개가 몸으로 스며들었다. 몇몇 사진 속에 인물이 있긴 하나 한 그루의 나무, 한 포기 풀처럼 보였다. 그의 눈에 그리 비춰졌기 때문에 나의 눈에도 그러할 것이다. 인간 역시 한 자연물임을, 그것을 자주 잊고 자연을 돌보고 변화시킨다는 착각을 하고 있음을 일러주는 듯하였다.

갤러리 입구에 방이 하나 있었다. 아마 행정실이나 교무실이었을 위치다. 김영갑이 말년에 쓰던 사무실이라고 적혀있었다. 폐쇄되어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작은방이라 창만으로도 내부가 한눈에 보였다. 출입문 바로 옆에 책상이 있었다. 책을 찾는다는 본연의 역할에만 충실한 책장이었다. 장식 없이 기둥과 받침뿐인 책장에 낡은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책상도 세 개 보였다. 두 개는 좁고 긴 책상이었고, 하나는 그보다 조금 널찍하였다. 하지만 방이 비좁아 보이지 않았다. 서랍 없이 상판과 다리만 있는 나무 책상이 작가의 마른 몸과 닮았다. 그 책상에 앉으면 문장이 술술 나올 것 같고 책을 읽으면 책 속에 빠질 것 같았다. 몸이 불편한 작가를 위해서인지 의자는 크고 푹신한 것이었다. 손으로 만든 나무 책상과 연갈색 가죽 의자가 낯설지 않고 잘 어울렸다. 그 나름의 존재 이유가 분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리창에 코를 박고 눈으로 방을 쓰다듬으며 존재할 이유가 분명한 물건이 있는 집에서 존재할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살고 싶다 생각했다.

빈 벽에 대한 갈증, 담백한 공간에 대한 갈증이 유난히 사무치는 날이 있다. 화려한 집도 그렇거니와 화려한 사람, 의미 없는 소음을 만나고 오는 날이 있다. 그런 날 빈방이 하나 있어 그 속에 나를 담갔다 나오면 나아질 것 같다. 채워진 적 없이 날것 그대로 존재하는 방 한 칸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사치이면 욕심이다. 안방과 아이들 방이 있어야 하고 서재도 필요하다. 혹 여분의 방이 있더라도 그냥 비어둔다는 것을 가족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옷방으로 하자고 할지 모르고 나 역시 음악실로 꾸미고 싶은 욕심에 시달릴지 모른다. 빈방을 갖는 것은 이해받을 수 없는 욕망이다. 그래도 방 안에 들어서면 눈길이 벽과 벽 사이 공간만 응시하게 되는 방 하나 있으면 좋겠다.

그 방을 나는 맨방이라 부르고 싶다. 빈방과 맨방은 다르다 빈손과 맨손이 가는 그림으로 다가오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무언가 손안에 가두었다 놓아버린 손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음을 강조하는 손에 읽힐 이야기는 다르다. 빈방에서는 결핍과 이별이 떠오른다. 빈방에는 자리를 차지하던 옷장과 침대, 함께 거하던 누군가의 흔적이 남아있다. 기억이 주는 허전한 마음이 묻어 있다.

맨방에는 그런 암시가 없다. 처음부터 이제까지 그냥 방이었다. 아무것, 어느 누구에 의해 채워진 적 없는 방이다. 그래서 그 안에 들면 중립적인 마음이 들 수밖에 없고 오직 자신만 부각되는 날것의 냄새가 나는 방이다. 맨방에는 얇은 요와 가벼운 이불 한 채, 낮은 베개 하나면 족하다. 앉아있을 수 없는 고달픈 몸으로 그 방에 들고 싶을 때 요위에 모로 누워 빈 벽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싶을지 모르므로 창이 하나 있으면 더 좋겠다. 창과 문을 닫으면 방 밖의 일들이 조용히 물러나고 그 방에 앉거나 누웠다 나오면 세상 잡사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것 같다. 맨방에서는 장자의 말대로, ‘텅 빈 방에 뿜어내는 흰 빛’ 속에 고요히 머무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