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다리/이상규

테오리아2 2022. 9. 25.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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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식탁에 멀슥이 앉아 밥 먹는 것이 싫어서 TV 앞에 밥상을 펴고 아내와 조반을 같이한다. 아쉬운 대로 나이 들어 만들어진 대화의 장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상다리가 조금씩 흔들리더니 밥상이 자꾸 한 쪽으로 기운다. 나사가 헐거워졌는지 늙은 소처럼 주저앉을까 불안하다. 상을 펼 때마다 다리를 바로 세우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아내가 나의 반복된 불평에 ‘요즈음 그런 것 수선해주는 목수가 어디 있냐?’는 말만 되풀이 하더니 어느 날 꼭꼭 숨겨두었던 말끔한 새 상을 불쑥 내놓았다. 다리가 튼튼한 밥상의 출현으로 거실에 금세 안정이 찾아왔다.

얼마 전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라는 일본 영화를 보았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자유인이 된 여주인공이 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튼실한 상다리가 유난히 눈에 띠였다. 외로운 그녀의 삶을 지켜주는 기둥인 양 든든해보였다.

다리는 몸통을 받쳐주고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기둥이다. 사람, 동물, 사물을 막론하고 다리는 본체를 버텨주는 중심 역할을 한다. 덩치 큰 물소의 등을 차고 오르는 숫 사자의 공격은 탄탄한 다리에서 시작하고, 땅바닥에 벌렁 나자빠진 물소의 허공에 허우적이는 다리는 운명의 순간이 임박함을 알려준다. 인간탄환 우사인 볼트의 100미터 기록도 허벅지의 꿈틀거리는 근육에서 나온다. 아무리 우람한 몸뚱이라도 가늘고 연약한 다리로는 싸움에서 승리를 장담하지 못 한다.

다리는 몸체의 중심을 잡아주는 외에 연결과 통합의 역할도 한다. 강물로 끊긴 양안을 연결하여 막힌 길을 잇대주고 서로 다른 문화권을 하나로 통합하여 발전시키기도 한다.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잇는 수에즈 운하와, 대서양과 태평양을 관통하는 파나마 운하는 세계 지도를 바꾸어 놓았고, 도버해협을 연결하는 영불해저터널은 유럽의 역사를 바꾸는 환경을 마련했다. 플로리다에서 키웨스트까지 다리로 이은 바닷길은 헤밍웨이의 열성 펜들에게 유명 작가의 향취를 쉽게 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모두 또 다른 의미의 다리이다.

6.25사변이 터지자 밀려 내려오는 북한군을 막기에 급급한 남한정부는 하나뿐인 한강철교를 끊었고, 백성을 팽개치고 도주했다는 역사적인 오명을 두고두고 면치 못 하고 있다. 이제 한강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다리는 33개로 늘어나 서울을 그 시대와는 판이한 국제적인 문화도시로 바꿔 놓았다. 그런가하면 4시간 이상 걸리던 동해안 북쪽 끝 양양 해변은 이어진 터널 덕에 서울 사람들에게 2시간이 채 안 되는 가까운 관광명소로 바뀌었다. 산과 바다를 뚫는 터널, 섬과 섬을 연결해주는 연륙교, 심산계곡에 걸치는 출렁다리는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점도 있지만 단절된 양단을 이어주고 소통시켜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긍정적인 면을 간과할 수 없다.

 

 

 

 

다리는 때로 만남과 헤어짐의 감성을 표출해내기도 한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서 일본군수용소 소장의 요청에 못 이겨 부하 공병들과 함께 애써 완공한 다리를 폭파하러온 유격대에 어쩔 수 없이 협조하는 영국 지휘자의 고뇌. 순회 사진작가와 한적한 어느 시골 부인의 우연한 만남에서 이루어진 애틋한 중년 남녀의 사랑을 그린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이 안개 낀 다리를 배경으로 펼쳐져 만남과 이별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움에 애태우던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곳도 까치들이 놓아준 오작교가 아니던가.

내 몸을 지탱해주던 다리는 한 때 뜻하지 않은 아킬레스건 파열로 제 기능을 못하고 힘든 일상을 겪게 했다. 정형외과에 가서 주사를 맞고 재활치료를 받는가 하면,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 멀리 수원까지 가서 시술도 받았다. 집 가까이 한방에서 침도 셀 수없이 맞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장기간의 치료로 몸이 조금씩 근력을 잃어가던 어느 날 병원에서 발뒤꿈치에 찌른 굵은 주사바늘로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의사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혈관을 타고 흐르던 썩은 피가 빠져나왔다는 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팬데믹으로 방역 마스크를 쓰는 것이 번거로워 다니던 스포츠센터 남은 티켓을 포기하고 새벽 강변을 걷기 시작했다. 더위와 추위와 피로에 게을러지는 몸과 마음을 달래고 계절을 바꿔가며 끈질기게 내달렸다. 차츰 식욕도 돌아오고 근력이 되살아나더니 얼굴에 생기가 돈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듣게 되었다. 이제 인근 둘레 길을 걷는 것쯤은 별 부담이 없다. 내친 김에 등산 마니아 친구들을 따라 북한산에 올라 힘든 10킬로 바위산을 7시간에 완주했다. 올 가을에는 지리산 종주를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은근히 욕심을 내본다.

문득 내다버린 불실한 밥상이 생각난다. 관리인이 아파트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수리하는 모습을 언뜻 본 것 같다. 그 상도 내 다리처럼 이제 상처를 회복하고 새 주인을 만났을까. 고장 난 다리를 고쳐서 다시 써도 되지 않았을까 뒤늦은 연민이 인다.

다리는 몸체를 받쳐주는 기둥인 동시에 서로 떨어진 사람이나 장소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이다. 매일 일터로 출퇴근을 시켜주는 지하철이 시민의 다리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평소 고장 나지 않게 잘 유지 보수해야 한다. 어느 날 느닷없이 무너진 성수대교처럼 출근길의 여고생들에게 뼈아픈 재앙을 안겨서는 안 되겠다.

가족을 연결해주는 다리는 사랑이요, 사회와 나를 연결해주는 다리는 배려요, 삶과 죽음을 연결해주는 다리는 종교나 예술이 아닌가 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수필문학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리 길지 않을 남은 생에서, 가정이나 사회에 무언가 도움을 주는 건강한 다리 역할을 하며 살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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