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대나무 숲 사이로 어렴풋이 고택故宅이 보인다. 스산하게 부는 바람에 요동치는 대나무 숲 사이 로 고풍을 한껏 자랑하며 서 있는 고택의 모습 결코 심상치 않다. 대나무 숲 사이에 고택이라, 꼭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기분이다. 이 얼마나 돌아오고 싶었던 본향本鄕이었던가. 30년 만에 다시 찾은 고택이건만, 왠지 불가촉한 거리에서 몸과 마음이 뱅뱅 맴도는 기분이다. 솟을대문 앞에 선다. 처마는 마른 속을 훤히 드러내며 풍화에 의해 이미 삭아내려 버렸다. 한 때 권력과 부 의 상징이었던 높디높은 담벼락엔 능소화가 한껏 피어올랐다. 솟을대문을 열고 기화요초들로 무성해진 마 당에 들어서니 대나무 숲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이 내 몸과 마음 곳곳을 훑고 지나간다. 마당을 거닐며 세월의 설진屑塵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