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집안에 발을 들이다가 깜짝 놀랐다. 베란다 쪽 유리창문이 스크린처럼 환해서다. 가까이 가보니 입주를 앞둔 건너편 아파트에서 일제히 불을 켜 놓았다. 마지막 점검인지 과시용인지는 모르지만 장관이다. 1600세대의 직육면체에서 뿜어내는 압도적인 불빛은 며칠간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화려하게 신고식을 치렀다. 길 건너 골목시장 자리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문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보상이 끝나 대부분의 점포가 문을 닫은 지도 몇 해 되었다. 신천 가는 길에 그 앞을 지나다 보면 마치 도심 속의 섬 같았다.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데다 낮고 허름한 점포는 비닐에 봉해져 누렇게 삭아가고 있었다. 과일가게와 철물점 한 곳이 문을 열어놓기는 했지만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없었다. 누군가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