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신 후 물건 정리를 했다. 부엌 곳곳에 소주병이 숨겨져 있었다. 싱크대 아랫단에서 양주병 과 포도주가 진열된 찬장 구석진 곳에서, 간장병과 식용유 사이에서도 초록색 병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기 제사가 끝나고 시누이와 시고모님의 거침없는 입담이 지나간 후에 돌아서서 몰래 찾아들었을 눈물 한 방 울 소주 한 모금. 서울에 있는 여대에 가고 싶다고 했지만 장녀라 지방교대를 가야했던 큰 언니가 단신투쟁 을 할 때에도 모른 척 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큰 오빠를 해병대에 보내고 돌아섰을 때에도, 지방고위공무 원으로 승승장구하던 아버지가 당뇨합병증으로 거동을 못하셨을 때에도 남몰래 찾아 들었을 소주 한 병.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도록 답답하고 체증이 내려가지 않았을 때 혼자 식구들의 눈을 피해 들이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