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을 만들기 위한 시간은 동백이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 팥의 앙다문 입술이 벌어지기까지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자신이 깨고 나오기까지 호흡조절에 힘쓴다. 그때부터는 동안거다. 참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내는 순간 팥은 설익고 만다. 붉디붉은 팥은 같은 콩과 식물인데도 콩들과 잘 섞이지 못한다. 콩은 둥글둥글하고 모난 데가 없어서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 모서리에 베여도 훌훌 털고 쉽게 일어나는 힘을 가졌다. 팥은 야무지면서 단아하고 차가운 느낌이다. 도도한 인상이 거부감을 일으킨다. 너그러운듯하나 속 좁은 여인네 같고, 포용과 배려보다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으로 보인다. 소심한 팥은 세상의 바람과 맞서지 않는다. 지혜롭게 보이지만 그의 속은 앙금으로 까맣다. 돌덩이 같은 팥이 스스로 껍질을 벗고 나올 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