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쉬이 열리지 않는다. 경첩에 박힌 못에 녹이 슬어있고, 자물쇠는 조금도 틈을 보이지 않겠다는 듯이 입을 꽉 다물고 있다. 푸르고 희끗한 얼룩이 진 열쇠뭉치 중 어느 것도 그 마음을 풀지 못한다. 장도리가 동원되고 작은 해머까지 나선 후에야 경첩이 빠진다. 뻑뻑한 문을 밀치자 매캐한 먼지와 함께 갇혀 있던 시간들이 왈칵 쏟아진다. 방안이 깜깜하다. 손전등을 비춘다. 창문은 장롱과 찬장으로 가려져 있어 햇살 한 줌 들지 않는다. 손전등은 심해의 잠수함 불빛처럼 방안을 훑는다. 커다란 이불더미가 앉아있고 낡은 트렁크를 쌓아 놓은 것이 보인다. 나는 신발을 신은 채 방안으로 들어선다. 잡동사니 사이를 헤치고 안쪽으로 다가간다. 이불더미 뒤 구석에 미싱이 보인다. 미싱은 오랜 세월 한 곳에 붙박여 수행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