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숙수필가 2

미싱과 타자기 / 김응숙

문은 쉬이 열리지 않는다. 경첩에 박힌 못에 녹이 슬어있고, 자물쇠는 조금도 틈을 보이지 않겠다는 듯이 입을 꽉 다물고 있다. 푸르고 희끗한 얼룩이 진 열쇠뭉치 중 어느 것도 그 마음을 풀지 못한다. 장도리가 동원되고 작은 해머까지 나선 후에야 경첩이 빠진다. 뻑뻑한 문을 밀치자 매캐한 먼지와 함께 갇혀 있던 시간들이 왈칵 쏟아진다. 방안이 깜깜하다. 손전등을 비춘다. 창문은 장롱과 찬장으로 가려져 있어 햇살 한 줌 들지 않는다. 손전등은 심해의 잠수함 불빛처럼 방안을 훑는다. 커다란 이불더미가 앉아있고 낡은 트렁크를 쌓아 놓은 것이 보인다. 나는 신발을 신은 채 방안으로 들어선다. 잡동사니 사이를 헤치고 안쪽으로 다가간다. 이불더미 뒤 구석에 미싱이 보인다. 미싱은 오랜 세월 한 곳에 붙박여 수행을 한..

시간을 맞추다 / 김응숙

비록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모르더라도 나는 일찍이 상황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장소는 부산역 광장이었다. 역 광장에는 커다란 시계탑이 서 있었는데 초침이 어찌나 굵은지 내 팔뚝만 했다. 시간을 끌고 가는 기중기처럼 그 초침은 힘겹게, 그러나 절도 있게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은 그 시계탑 앞에서 잠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힐끗 한 번 올려다보고는 그 앞을 지나쳤다.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은 바쁜 걸음으로 시간을 재촉했고,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비교적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걸었다. 둥근 역 광장에는 제각각 다른 간격으로 찍힌 그들의 발자국들이 시계탑을 중심으로 둥글게 돌아가고 있었다. 기차를 타기 전날 밤에는 꼭 기차를 놓치는 꿈을 꾸었다. 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