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여원무(女圓舞)-김근혜

테오리아2 2013. 6. 1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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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여원무(女圓舞)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 단오이다. 선조들은 이날을 절기 중, 으뜸 명절로 여겼다. 중국 초나라 회왕 때 굴원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간신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하여 멱라수에 몸을 던졌는데 그것이 5월 5일이었다. 그 뒤 해마다 굴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단오가 되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지역인 경산 자인에서는 해마다 단오제가 성대하게 열린다.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인 ‘경산자인단오제’이다. 신라 시대부터 전승되어 오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민속축제이다. 자인의 수호신인 한장군을 기리는 유교식 제례를 비롯하여 여원무, 자인단오 굿, 호장장군 행렬, 팔광대, 자인계정들소리, 씨름, 그네타기 등의 각종 민속 행사가 다채롭게 열린다.

경산 인근에서 이십여 년을 살면서도 단오제를 보지 못했었다. 자인단오제에 대한 유래는 풍문으로 듣고 있어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도로가 주차장이 될 정도로 큰 행사인 줄은 몰랐다. 자인단오제는 한장군을 기리기 위한 추모제의 의미가 크기 때문에 여원무를 빼놓을 수 없다. 여원무는 신라 시대에 왜구들이 자인면 주민을 괴롭히자 한장군이 자신의 누이와 함께 장정들을 데리고 여자로 가장해서 춘 춤이다.

여원무는 단순히 여흥을 돋우기 위한 춤이 아니라 한 고을을 구하기 위한 장부의 춤이었다. 사모하는 마음이 컸었기에 한번은 보고 싶었다. 여원무가 시작되자 술렁대던 관람객들은 숨소리조차 죽였다.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고정시켰다. 무려 3m나 되는 여원화를 쓰고 왜구들을 유인할 때의 춤사위는 긴장감과 절박감을 더했다. 한장군과 누이 분장을 한 두 여인의 고운 자태와 시연자들의 춤사위는 보는 이들을 감동하게 했다. 생사를 오가는 절박했던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한 한장군의 애민정신이 더없이 돋보였다. 그의 충의 정신을 잊지 않고 천 년이 넘도록 맥을 이어오는 지역민들의 뜨거운 정성 또한 훈훈하다.

사진기를 켰다. 한 장군의 뜨거운 혼(魂)이 서려 있는 여원무를 담았다. 역사의 자취를 누군가에게는 알려야 할 것 같은 사명감도 일었다. 나라가 위급할 땐 영웅이 난다고 했는데 한장군이 없었다면 자인도 온전치 못했으리라. 위태로움 앞에서 자신의 몸조차 돌보지 않고 의(義)를 위해 분연히 일어난 한장군이 자랑스럽고 우리 민족성도 대단하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꼈다. 자인단오제가 문화행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후세대들에게 산교육이 되며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고취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 같아 흐뭇했다.

김근혜<수필가·대구행복의 전화소장 ksn15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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