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용돈이 없어서-김근혜

테오리아2 2013. 5. 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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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난한 목사님의 사연에 카네이션 그림이 올라왔다. 화가도 기가 죽을 만큼 그림 솜씨가 대단했다. 고등학생 아들이 용돈이 없어서 어버이날 선물을 카네이션 그림으로 대신한 것이라고 했다. “용돈이 없어서…”란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요즘 아이들 같지 않았다. 용돈이 없다고 불평하지 않고 그림 꽃으로 대신한 자녀가 기특하고 대견했다.

큰아이가 어버이날 선물이라며 안개꽃과 큰 상자를 내밀었다. 내용물은 갱년기 여성이 먹는 음료였다. 홍삼제품이니 가격도 만만찮았을 것 같았다. 딸아이의 형편을 아는 나로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취업준비생이라 용돈도 없는 아이가 어떻게 마련했는지 궁금했다. 어버이날에 맞추어서 이벤트란 이벤트엔 모두 응모했다고 한다. 웬만한 사연으로는 당첨되기 어려운 것을 아는지라 자신의 속내를 구구절절 보였을 아이가 안쓰러워 눈물이 핑 돌았다. 큰돈을 들이고 산 거창한 선물보다 아이의 애절한 마음이 담겨 있어 더 귀하게 느껴졌다. 달갑지 않은 어버이날이 아이를 울렸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큰아이가 입사원서를 내는 곳마다 떨어졌을 때 살얼음을 밟는 듯했다. 큰 시험 거리를 안은 아이의 무게가 느껴져서 대신 아팠으면 했다. 말도 조심스러워 입단속을 했다. 스무 살짜리 동생은 약이라도 올리듯이 국제대회에서도 우승했다. 조건이 좋아서 후원자도 만났다. 학비에 용돈까지 받는데 웬만한 월급쟁이보다 잘나간다. 작은 아이를 축하해 주려니 큰아이 눈치가 보이고 그냥 있자니 작은아이가 서운할 것 같아서 그때만큼 마음이 불편한 적이 없었다. 큰아이는 질투를 낼 법하건만 표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동생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카카오 스토리에 올리며 누나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어버이날에 작은아이에게 문자를 넣었다. “오늘이 무슨 날이지”, “어버이날”, “그런데, 뭐 없나?”, “ㄱㅅㄱㅅ”, “ㄱㅅㄱㅅ 이 뭐냐”고 큰아이한테 물었다. “감사감사”라고 했다. 작은아이의 대화체는 통상적으로 자음 몇 개가 끝이다. 해독사가 있어야 겨우 읽어낼 수 있다. 옆구리를 찔러서라도 자녀에게는 기념일을 알려야 하는 게 내 지론이다. 교육상 문자를 넣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다음 날 통장으로 20만원이 들어 왔다. 큰아이의 심기가 불편할까 봐 말하지 않았다. 작은아이가 보내온 돈으로 큰아이 베개를 샀다. 잠이라도 편안하게 잤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용돈이 없어서 이벤트에 응모한 내 아이나 그림 꽃을 선물할 수밖에 없었던 목사님의 자녀가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그들의 기억 속에 아픔으로 자리하지 말고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한다. 잊지 못할 어버이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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