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반곡지-김근혜

테오리아2 2018. 4. 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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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곡지

 

  김근혜

 

곡지를 사진에 담으려는 사람들 등쌀에 복숭아꽃이 몸살을 앓는다. 제 스스로 저어할 수 없는 꽃송이의 옹알이가 아린 오후다. 그래도 자신을 찾는 이들에게 마음 넓혔을 것을 생각하니 기특하다. 나뭇가지 몇 개 꺾어 경계를 만든 주인의 애타는 심정이 울면서 웃었던 건 아닐까.

 

세상 어디에도 있는 연못이지만 반곡지는 특별하다. 유명한 출사지로 알려지기 전부터 나만의 장소였다. 슬픈 일, 화난 일도 이곳에 오면 편안해진다. 특히 4월의 반곡지는 Deep PurpleApril이 수면 위로 흐른다. 웅장하고 경쾌하면서 클래식한 리듬이 잠자는 영혼을 쩡쩡 깨운다.

 

반곡지에 와서 이 선율에 빠져 보라. 까닭 없이 외로울 때도 이곳에 와 보라. 마르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 같은 샘 하나 있으니. 누이 같고 언니 같은 부드러운 손 하나 있으니. 그리운 이의 숨소리 남겨져 있으니. 뜨거운 심장 하나 떨고 있으니.

 

2층 집이 눈에 띈다. 해를 바라보기 위해 저수지를 약간 비껴 앉아 있다. 저 집을 보면서 나도 반곡지에 이층집을 짓고 문패를 달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저수지를 바라보는 집을 짓고 이 층은 내 전용 공간으로 꾸미고 싶다. 앞뜰에는 야생화를 심고 뒷마당에는 철마다 다른 꽃을 심어 꽃밭 주인 노릇을 해볼 것이다.

 

지인이 찾아오면 오색차를 건네며 삼류시인이 되어보는 것도 좋으리. 편안한 옷차림으로 침대에 나란히 누워 늙지 않는 꿈 얘기를 나누다 밤을 세보는 것도 좋으리라. 회색 콘크리트 속에 가두어 두었던 노마드 끼를 풀어놓고 마음껏 호흡해 보리라. 반곡지에서의 전원생활이 꿈으로 끝날지라도 꿈꾸는 동안은 행복했다고 말하리라.

 

내 꿈은 남들보다 늘 늦게 이루어진다. 절망한 적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힘들고 어려울 땐 우회하는 버릇이 생겼다. 서두르지 않으니 그리 넘어지지도 않았다. 앞으로도 마부위침(磨斧爲針)이란 말을 새기고 살 것이다. 이루기 어려운 일이더라도 우직하게 밀고 나가면 언젠간 이루어지겠지.

 

반곡지에 오면 행복해진다. 행복은 소소한 것에서 오는 것 같다. 자연을 보고 동화되어 가는 기쁨, 좋은 냄새를 맡았을 때의 황홀감, 아름다운 소리를 들었을 때의 경이로움은 행복 호르몬을 만든다. 조금만 몸을 낮추면 일상 하나하나가 행복이 되는 것 같다. 거대한 것에 기대를 걸기 때문에 금방 실망하고 좌절하는 건 아닐까.

 

행복은 그저 오는 것이 아니라 맞이할 줄 아는 사람에게 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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