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문자를 씹다-김근혜

테오리아2 2013. 4. 2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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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문자를 씹다
 
 
 
어느 날 카카오톡으로 동영상이 들어왔다. ‘보낸 문자에 대해 답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기도문’이라는 유머였다. 유머라기보다는 거의 저주에 가까울 정도라서 머리가 쭈뼛했다. 이런 동영상을 만든 사람도 그렇거니와 내게 보낸 지인의 의도도 뼈가 있는 것 같았다.

동영상을 보낸 사람에게 내용이 너무 잔인한 것 같다고 했더니, 재미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하루에 스무 번 이상 설사하게 하고 설거지를 할 때마다 그릇을 깨게 해 달라’는 글이 과연 재미있는 것일까. 답장하지 않은 것이 큰 형벌처럼 느껴졌다. 문자를 받는 사람은 상당히 불쾌하고 상처를 받을 일이었다.

또 어떤 문자가 들어올지 겁이 나서 지체 않고 답장을 보냈지만 찜찜했다. 반면, 어떤 경각심도 생겼다. 답장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었다. 방법은 좋지 않았지만, 나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나도 문자를 보내면서 답장을 받지 못한 일이 더러 있었다. 중요한 보고 형식의 문자도 있었고 안부 문자도 있었다. 여러 번 보냈음에도 상대방은 속된 말로 씹었다. 서운함을 넘어서 무시당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자존심도 상하고 몹시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그 사람의 됨됨이까지 의심되었다.

오죽했으면 그런 동영상을 만들었을까. 영상물을 만든 사람이 이해가 되었다. 내용만 순화한다면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좋은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겪어보지 않았을 땐 대수롭지 않았던 일이 막상 당하고 보니 무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큰 실수였던 것이다.

지금은 SNS 소통 시대이다. 우리는 가상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과 정보를 공유하고 감정을 나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다. 때론 얼굴을 보면서 얘기하는 것보다 예의 바르게 행동할 때가 더 많다.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따뜻한 마음을 실어 보내는데, 가까운 사람에게 바쁘다는 핑계로 얼버무릴 일은 아닌 것 같다.

답장은 상대방에 대한 작은 예의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큰 상처를 받고 작은 일에도 크게 감동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간과할 일은 아닐 성싶다. 조금 귀찮더라도 정성을 담아 마음을 나눈다면 인간관계가 더 돈독해지지 않을까. 서로가 감정을 다친 후에 부랴부랴 수습하는 것은 늦은 감이 있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건 참으로 고마워해야 할 일이 아닌가. 서로 조금만 배려한다면, 순환 장애로 불편한 관계는 되지 않을 것이다. 순환 장애의 소통 용해제는 보내온 문자에 답장을 보내는 일일 게다.

김근혜<수필가·대구 행복의 전화 소장 ksn15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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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04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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