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꽃구경-김근혜

테오리아2 2013. 4. 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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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꽃구경
꽃들의 무도회가 시작되었다. 개나리의 봄 편지를 기점으로 시샘이라도 하듯 산수유, 목련, 벚꽃이 이어달리기 한다. 개구리의 경쾌한 리듬이 잠자던 꽃들을 깨운다. 여기저기서 봄나들이 오라고 손을 까딱인다. 이런 유혹이라면 얼마든지 빠져도 좋을 것 같다. 어花(화), 봄봄, 둥둥.

낙동강 물줄기도 봄의 향연에 두근거리는지 내 마음보다 더 일렁인다. 하이얀 나비 떼가 노오란 유채꽃잎을 물고 사랑을 속삭인다. 살포시 눈을 감은 잎사귀 위로 상그르르 맺혀 있는 이슬방울들, 인기척에 놀라 얼굴색이 샛노랗게 변했다. 어花, 봄봄, 둥둥.

앞서가던 노부부의 꼭 잡은 손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삶의 길에서 강약(强弱)이 있고 농담(濃淡)이 있고 명암(明暗)이 있었을 터이지만 누적된 행복감이 묻어난다.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작은 바람도 생긴다. 눈에 보이는 고운 것에 홀려 진정 아름다운 것은 보이지 않았나 보다. 노부부의 느티나무같이 든든한 모습이야말로 어느 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거늘. 어花, 봄봄, 둥둥.

꽃을 보고 잠시 황홀경에 침미해진다. 눈을 사로잡는 것은 비눗방울이 부유하다 일순간에 툭 터지고 마는 현상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고 마음을 쫓게 된다. 나약한 인간이라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어花, 봄봄, 둥둥.

꽃은 가난한 영혼을 지닌 자들에게는 낙원이다. 절망 가운데서 희망을 주고, 슬픔 가운데서 기쁨을 선사한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는 엄마와 같다. 그런데 나는 세상 욕심에 붙들려 내놓은 게 없다. 어花, 봄봄, 둥둥.

꽃구경은 같되 자연이 주는 꽃은 마음을 감동시키고 해어화(解語花)는 사람을 혼미하게 만든다. 말을 하는 꽃에 미혹된 몇몇 군주는 선경을 헤매다 망국을 면치 못했다. 누구나 아름다운 것을 보면 손에 넣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 마련이다. 인간의 본능이 아니런가. 해어화로 인해 빚어진 불행한 역사는 지난날을 거울삼아 몸과 마음을 살피게 하는 반면교사의 좋은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어花, 봄봄, 둥둥.

인생이 열흘 붉은 꽃과 다를 게 무엇이랴. 봄마다 부활하는 꿈을 꾸지만 꽃은 꽃이로되 꽃이 아님을 안다. 온갖 보화가 가득해도 지킬 수가 없고 마지막 가는 길엔 한 푼 물고 가지 못하는 게 인생이다. 어花, 봄봄, 둥둥.

꽃의 운명을 보며 부린 욕심도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욕망이 무거울수록 생(生)은 무겁다고 이 꽃 속에 푹 파묻혀 벌거숭이로 있고 싶다. 미움도 사랑도 욕망조차도 꽃밭에 다 묻어 두고 싶구나. 어花, 봄봄, 둥둥.

김근혜/수필가·대구행복의 전화 소장 ksn15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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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04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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