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대일산필>뽁뽁이-김근혜

테오리아2 2014. 2. 1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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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산필>뽁뽁이

 

 

  요즘 뽁뽁이가 인기다. 유리나 깨지기 쉬운 물건을 싸는 포장지가 난방용 단열재로서 훌륭한 소재가 되었다. 비닐에 볼록볼록 튀어나온 것을 장난삼아 봉숭아 씨앗 터뜨리듯 톡톡 터뜨리던 에어캡이 바람막이로 난로 노릇을 한다.

 

 우리 집은 남향이라 태양열로 인해 낮 동안은 난방하지 않아도 추운 줄 모르고 지낸다. 저녁 한 차례만 난방해도 훈기가 돈다. 그래도 북쪽에 있는 아이들 방은 해가 들지 않기 때문에 외풍이 좀 있다. 장미꽃 그림이 있는 뽁뽁이를 붙였다. 썰렁해 보이던 창문에 장미꽃이 활짝 피었다. 아이들 방은 장미 향이 가득한 5월이 되었다.

 

  뽁뽁이를 보니 이십여 년 전 주택에서 살던 때가 생각난다. 산속은 외딴섬이나 다름없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보이는 것은 오로지 하늘뿐이었다. 마흔네 가구가 비닐 옷을 입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산속이라 겨울바람이 차가웠다. 아이들 볼엔 얼음이 끼고 피부는 투실거렸다. 집들마저 바짝 움츠리고 사람들 가슴속에는 고드름이 자랐다. 창마다 두툼한 비닐 옷을 입히고 겨울 채비를 했다. 가끔 강한 바람에 비닐 옷이 상처를 입고 잔기침을 할 때면 외풍으로 얼굴이 얼얼했었다. 가난한 자의 야윈 그림자는 더 시리고 아렸었다.

 

  산속에서의 겨울은 동화 속 거인의 집만큼이나 봄이 오지 않았다. 언제나 완행열차였다. 봄은 무척 기다려지는 귀한 손님이었다. 외풍을 막는다고 쳐놓은 비닐 옷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비닐 옷마저 없었다면 산속에서의 겨울은 삭막하기 그지없었으리라. 바람막이 역할을 해서 그나마 훈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인간 삶의 계절이란 책에서 좋은 멘토를 갖지 못한 것은 부모 없이 자라는 고아와 같이 불행이며 비극이다.”라고 했다. 외풍을 막아 단열을 해주는 뽁뽁이처럼 인간 삶에서도 진정한 조력자가 있다. 그런 멘토를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따스한 가슴을 가진 분들이 계신다. P 선생님, L 선생님이다. 처진 어깨를 활짝 펼 수 있도록 파릇한 희망을 선물하신다. 나는 그분들의 격려와 응원을 받으며 한 뼘씩 성장한다.

 

  빌 오히언은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참으로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된다. 방향을 잃고 헤매는 사람에게 길을 밝혀주는 등불 같은 것이다. 체온을 나누는 사람들을 통해 힘을 얻는다.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들어오는 메시지와 전화.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멘토이다. 남의 일에도 나의 일 같이 나서서 용기를 준다. 슬럼프에 빠질 때도 있지만 독자로서, 선배로서, 스승으로서 아낌없이 주는 응원에 힘입어 꿋꿋할 수 있다. 혼자 힘으로 맞설 수 없는 세상에 맞대고 살아가는 방법을 몸으로 가르쳐주시는 뽁뽁이 같은 분들이다.

 

  손가락이 다섯 개인 것은 서로 깍지를 끼고 살아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분들은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 같은 엄지이고, 어머니 같은 검지이다. 거친 세상에서 깍지를 끼워준 고마운 분들이다. 마른 세상에 혼자가 아니어서 참 든든하다. 손 내밀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2014. 2. 10 <김근혜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