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대일산필<가슴에 그리는 사랑>-김근혜

테오리아2 2014. 1. 1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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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산필<가슴에 그리는 사랑>

 

 

  처음 만난 그녀 입에선 은행 냄새가 났다. 이에는 음식 찌꺼기가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 그런 얼굴로 활짝 웃으며 반기는데 냄새난다고 피할 수 없었다. 얼결에 따라 웃으려고 입은 벌렸지만 크게 열리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을 들킬까 봐 미안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지만 아주 오랜 후에야 만나는 것처럼 설렘이 있어서 좋았다. 반갑다고 넘어질 듯 달려오는 그녀를 대할 때는 눈물이 났다. 내 가족도 이처럼 나를 반겨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날수록 정이 갔다. 그녀가 꿈에서도,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길을 걸을 때도, 꼭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맑은 웃음이 사무치도록 어른거렸다. 천진하게 웃던 모습이 내 얼굴을 포갰다.

 

  그녀를 따라 하려고 거울을 보며 연습했다. 입을 조금 조금씩 벌렸다.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웃음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었다. 평소에 살아온 모습이 반영되는 것인데 각색한다고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녀를 속이려 했던 게 걸린다. 달아오르는 얼굴을 찬물로 식혔다. 웃음 하나에도 진심과 가식의 차이를 보며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사회복지 시설에 있는 지적장애를 가진 생활인이고 나는 미술치료 봉사자이다. 그녀가 남자 생활인과 마주칠 일은, 운동할 때와 식사 때뿐이다. 가까이에서 볼 수 기회는 거의 없다. 지환 씨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옆에 바짝 기대앉는다. 그녀 눈에는 모든 게 신기할 뿐이다. 지환 씨의 얼굴을 쓰다듬기도 하고 안경을 빼서 자기 눈에 걸쳐보기도 한다. 휠체어도 신기한 듯 요리조리 만져본다. 어린아이가 처음 보는 물건을 보듯이 호기심으로 눈을 떼지 못한다.

 

  지환 씨는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모르고 몸을 배배 꼬고 있다. 그녀는 자리까지 옮겨 지환 씨 옆에 앉았다. 연신 싱글벙글한다. 지환 씨 어디가 좋으냐고 물었더니 올골이라며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리킨다. 지환 씨도 그런 그녀가 싫지 않은 모양이다. 처음엔 어색해하더니 서로 손을 꼭 잡기도 하고 그림을 보며 깔깔거리기도 한다. 지환 씨의 그림 속에서 단발머리 여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랑은 마음속에 집을 짓는 일일 게다. 그들 가슴속에도 둘만의 공간이 소담하게 지어지고 있는 것 같다. 작은 씨앗이지만 큰 나무가 될 날을 그려 본다.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그들이라서 일주일이 천년만년같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수업 시간에 얼싸안고 볼을 어루만지는 모습이 애틋하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그들을 보며 짧은 만남, 긴 이별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주어진 시간을 더 연장해보려고 노력했다. 차마 돌아설 수 없어서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두 사람이 시야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들의 관계를 알 리 없는 사회복지사는 생활관으로 빨리 가자며 재촉한다.

 

  그들에게서 사람 냄새를 맡는다. 세상에 길들지 않은 천진함이다. 그들을 보며 살아가는 이유를 깨닫는다. 나를 보면 넘어질 듯 달려오던 그녀가 이젠 지환 씨 쪽으로 내달린다. 마음 한쪽이 서운하다. 못 본 척하고 교실로 들어간다.

 

             2014. 1.13 <김근혜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