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밑둥치에서 민달팽이 한 마리 기어오르고 있다. 거칠고 골이 깊은 나뭇결위에서 천천히 배밀이를 하며 허공에 촉수를 뻗는다. 까슬하게 날을 세우는 소나무 갈기에 민달팽이의 여린 몸이 상처라도 입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하필이면 왜 소나무 둥치를 택했을까. 몸매 매끈한 은사시나무나 단풍이 아름다운 옻나무도 옆에 있다. 봄이 되면 맨 먼저 꽃망울 터뜨릴 산벚나무도 지나치고 민달팽이는 멀고도 험한 길을 가려하고 있다. 부지런히 쉼 없이 오르고 오르면 애초에 갖지 못한 집이라도 있는 것일까. 높은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방향을 잘못 잡은 것 일수도 있다. 방관자일 뿐이지만 나는 한참 바라보다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다. 환영처럼 끈적끈적 달라붙는 민달팽이위로 요양병원에 누워있는 숙모가 겹쳐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