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얼룩 3

푸른 얼·룩-김근혜

푸른 얼·룩 김근혜 블라우스에 묻은 얼룩이 표백제를 써도 지워지질 않는다. 왼쪽 가슴에 남은 흔적 같다. 그 기억을 지우려고 손에 더욱 힘을 주고 문질러 본다. 손목만 욱신거린다. 열 몇 살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니 자태가 아름다운 여인이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조등으로 걸린 엄마의 빈자리가 늘 허전하던 때여서 그 자리를 대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새엄마는 나이 차의 괴리를 좁히지 못하고 날씨처럼 변덕이 심했다. 불협화음 사이에서 늘 조마조마한 나날이었다. 벗어나고 싶어서 날이 새기가 무섭게 학교로 달려갔다. 집이 싫어서 달렸고 그 여인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싶어서 또 달렸다. 묵은 때가 많은 빨래는 삶아도 본래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듯이 내 유년이 되돌릴 수 없는 얼룩으..

근* 글 2018.04.04

꽃보다 9

꽃보다 9 김근혜 교회 앞마당에 들어섰다. 헌혈차와 몇 개의 부스 앞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이라 예사로 넘기고 본당으로 향하고 있는데 “원장님”하는 목소리가 귀에 익다. 학모로 만나 지금까지 정을 나누고 있는 지인이다. “장기기증하실 거죠? 저도 했어요. 남편한테 권했는데 내가 서약서 쓰는 동안 도망가고 없네요. 큭큭.” 뜬금없는 지인의 말에 깜짝 놀랐다. 뭔가 옹색한 변(辯)이라도 늘어놓는 게 순서일 텐데 이럴 때 내 입심은 발휘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부스로 향하고 있는 내 발걸음이 신기했다. 서약서를 받아들었다. 글씨가 작아 잘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하는 것이니 읽어볼 필요도 없었다. 모두 표시했다. 얼떨결에 하긴 했는데 무슨 내용..

근* 글 2016.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