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새 한 마리가 동네의 아침을 깨우듯 유자 한 알이 온 방의 평온을 흔든다. 방문을 열 때마다 훅 덮치는 향기. 도발적이다. 아니, 전투적이다. 존재의 외피를 뚫고 나온 것들에게는 존재의 내벽을 뚫고 들어가는 힘도 있는 것일까. 절박한 목숨의 전언 같은 것이 내 안 어딘가를 그윽하게 두드린다. 맛보다는 향기로 승부한다는 점에서 유자는 레몬과 닮은 꼴이다. 레몬 향기가 금관 악기면 유자 향기는 목관악기다. 레몬 향기가 바이올린의 고음이면 유자 향기는 비올라의 중음이다. 매끈한 피부에 길쭉한 몸매, 청순하고 새치름한 레몬이 도회 아가씨라면 우툴두툴하고 우루뭉술한 유자는 투박하고 속정 깊은 남도 아낙을 닮았다. 스러지는 것들에게는 소멸의 공포 같은 게 있는 것인가. 유자는 요 며칠 더더욱 맹렬하게 향기를 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