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한 겨울은 길기만 했다. 봄의 문이 빨리 열리기를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개화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바람이 전하는 말에도 귀를 세웠다. 기다리던 꽃 소식을 지인이 전해왔다. 장비를 짊어지고 좁은 산길을 한달음에 달렸다. 내 망막 속으로 보랏빛 물결이 일렁였다. 가슴에 꽃 수가 새겨지는 순간이다. 겨울 이불을 개킨 청노루귀들이 실개천 사이로 다붓다붓 수를 놓았다. 바람꽃도 눈을 반짝이며 살랑살랑 안부를 묻는다. 누워있던 얼레지도 덩달아 일어난다. 한 세계가 꽃으로 피었다. 야생화들이 봄 햇살에 눈이 부신 듯, 치마폭으로 살짝 얼굴을 감싼다. 영혼마저 왈칵 쏟아내서 만든 아름다움이어서 더 경이롭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청초한 모습으로 서 있다. 그 자태가 의연하고 고고하다. 건드리기만 해도 금방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