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가 살던 곳은 경부선 기차가 지나가는 시골이었다. 저녁밥을 먹은 뒤 심심하면 나는 강둑에 앉아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는 언제나 어두운 들녘의 한 쪽을 들치고 씩씩하게 달려왔다. 기차는 아름다웠다. 캄캄한 밤하늘에 소리 없이 풀어지던 한 무더기의 증기도 아름다웠고, 네모난 차창에서 새오나온 불빛이 만드는 금빛 띠도 무척 아름다웠다. 그 들녘에 이르러 울리던 기적 소리는, 기차가 길게 내쉬는 숨비소리로 들렸다. 나는 그때 기차가 어쩌면 한 마리의 순한 짐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는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그리움을 내 가슴속에 주르륵, 두 줄로 박아놓고 갔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이라 기차가 오가는 시각이 시계 역할을 했다. 어머니는 내 바로 아래 동생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