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이 환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럴 일 있을까 싶었는데 화르르 꽃이 터진 것이다. 잗다란 연분홍 꽃잎이 더없이 앙증스럽다. 생긴 모양으로만 보면 풍로초나 앵초꽃을 닮았다. 갓 피어난 쌀알만 한 다섯 장의 꽃잎이 먼먼 은하의 세계에서 온 듯 애잔하다. 콧김만 불어도 날아갈 듯한데 미미한 향기까지 서렸다. 한겨울에 풀꽃이라니. 어리둥절하면서도 반갑다. 흙을 움켜쥐고 사는 것들은 배반을 모른다. 기쁨만 준다. 그런데 가만, 풀꽃 언저리에서 무슨 소리가 나지막 들리는 것 같다. 치, 번듯하지 않다고 외면하더니. 봐라! 나도 꽃 피울 수 있어. 구박할 때는 언제고 참말 염치도 좋다야. 세상 어디에도 의미 없는 존재는 없거늘. 제 발이 저린 나는 뜨끔했다. 지난가을 산길을 가는데 풀 하나가 발목을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