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간방에 먼지가 세 들어 사는 집이 있었다. 집 앞 큰 길에는 정류장이 없어도 버스가 멈춰 섰다. 해질녘에 버스가 지나가면 그 길 위에는 흙먼지와 아버지가 남겨졌다. 좀 있으면 대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부엌에서 숟가락 놓는 소리도 따라 들어갔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마루 위로 쏟아지는 네 남매의 목소리는 온 동네를 채웠다. 석류나무가 새순을 올리던 어느 봄날, 저물도록 버스가 서지 않았다.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이튿날 우리 가족은 짐을 꾸려 고향집을 떠나야 했다. 아버지가 손수 짜 주신 소나무 책시렁을 그대로 남겨 둔 채 몸만 빠져 나왔다. 이사 간 집에는 우편함이 없었다. 아랫목에 묻어 두던 아버지의 밥그릇도 사라졌다. 달아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던 나는 잠에 취해 살았다. 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