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 아래 어린 감이 여럿 떨어져 있다. 감꽃과 함께 풀 섶이며 길바닥에도 나뒹군다. 지난밤 세차게 불어대던 바람에 그만 버티지 못하고 낙과하고 말았다. 생을 다 살아내지 못한 감또개를 보면 가슴 한쪽이 아릿해진다. 고샅길을 돌아가면 큰 기와집 대문 앞에 오래된 감나무가 있었다. 봄이면 감꽃이 팝콘처럼 매달려 눈이 부셨다. 여름이면 넓은 그늘에 동네 어른들이 자리 깔고 더위를 피했다. 가을엔 주렁주렁 홍시가 달리고 새들이 몰려들어 나누어 먹었다. 곁을 지날 때마다 어린 나는 감나무를 가진 집이 부러웠다. 간밤에 바람이 불거나 비가 다녀간 이튿날 아침은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아버지가 외양간 아궁이에서 쇠죽을 끓이고 있었다. 나는 아직 눈썹 밑에 붙어있는 잠을 비비며 동생과 함께 감나무를 향해 달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