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났다. 추석을 앞두고 선산에 벌초하러 간 이튿날 날도 새기 전 아내로부터 날아온 소식이었다. 8남매 가운데 임종을 지켜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마디의 유언도 남기지 않는 쓸쓸한 퇴장이었다. 아파트 16층 집에서 염하였다. 운명하기 4년 전 어머니는 불의의 사고로 병원 영안실에 빈소를 차렸다. 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져 몸져누운 안방에 마련했다. 방 한가운데 병풍을 치고, 소렴, 대렴을 마쳤다. 형제들은 한쪽에서 염습이 끝날 때까지 앉아 있었다. 천주교식으로 장례하여 별다른 복장이라든지 상식 같은 건 아예 차리지 않았다. “5년이나 누워 지낸 망자가 욕창도 하나 없네.” 염을 하던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옆에서 거들던 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른쪽 엄지발가락 옆에 탁구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