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도 빨래가 널린 것을 보면 공연히 기분이 좋다. 빨랫줄에 하얀 와이셔츠가 걸려 있으면 더욱 그렇다. 결혼하고 아기를 기다리던 때, 우리는 이층집 바깥 베란다가 유난히 넓은 집에 세 들어 살았다. 아래층에는 부모를 모시고 여섯 살 된 ‘현이’라는 여자아이를 키우는 주인 부부가 살았는데, 그들은 볕 잘 드는 2층에 올라와 빨래를 널어놓고 가곤 했다. 색색의 옷이 널리면 화분 몇 개가 놓였을 뿐인 그곳 풍경이 달라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들이 넣어놓은 빨래를 보면 성이 차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엄마표 빨래줄에 길든 내 눈에 대충 걸쳐 놓은 모양새가 마음에 걸렸다. 남의 옷에 손을 대는 것이 찜찜했지만, 탈탈 털어 주름을 펴고 중심을 맞춰서 다시 널었다. 양말들도 나란히 짝을 찾아 주었다. 부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