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에서 남쪽으로 8킬로쯤을 벗어나면 예하리 라는 작은 마을에 연못하나가 있다. 연못이라면 농경지 수리이용 때문에 마을 뒤편에 하나쯤 엎드려 있게 마련이지만 내가 찾아가는 곳은 이와 품격이 다르다. 제방에 들어섰을 때 늙은 팽나무와 움츠린 노송들이 찬바람에 수군거리고 못은 가슴 속을 드러낸 채 허탈한 눈만을 뜨고 있었다. 바로 이 못이 내가 즐겨 찾는 연지 이다. 삼천여 평은 실히 넘을 것이다. 못가엔 서걱이는 갈대 잎 소리가 일어서고 말라빠진 연꽃 대궁들이 어지럽게 쓰러져 있다. 청둥오리 몇 마리가 쏜살같이 날개를 턴다. 하늘빛이 고웁다. 꽃을 피워 맺은 연방이 이미 식용, 약용으로 꺾이고 지금은 얼음위에 누워버린 연잎과 줄기들이 파수병처럼 서서 겨울바람을 맞고 있다. 나는 버릇대로 제방의 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