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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김근혜 수필가

장기읍성 둘레길이다. 나지막한 성벽은 여인의 허리선처럼 굽이굽이 감아 돌고 있다. 훤히 드러낸 등허리를 밟고 지인과 자분자분 걷는다. 한 층 한 층 쌓아 올린 성벽은 각기 다른 얼굴로 정겹게 서 있다. 푸른 이끼 속에서 새싹은 움을 틔우려고 발길질한다. 발아래 엎드린 동해가 유난히 굼실거리며 금방이라도 달려올 기세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낮은 집들이 어미 날개 아래 든 병아리 같다. 포근함이 밀려드는 오후다. 지나가는 여행객의 말소리가 외딴집의 담을 넘었는가 보다. 반가움에 뛰쳐나온 할머니가 여행객의 말을 받는다. 사람 구경하기가 얼마나 귀했으면 길손들의 발목을 잡을까. 할머니의 풍기는 인상으로 봐서 젊은 날은 담벼락에 심어둔 매화만큼이나 고고했을 것 같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읍성에 얽힌 전설을 엉거주춤..

제7회중봉조헌문학상 우수상-벽/ 김근혜

장기읍성 둘레길이다. 나지막한 성벽은 여인의 허리선처럼 굽이굽이 감아 돌고 있다. 훤히 드러낸 등허리를 밟고 지인과 자분자분 걷는다. 한 층 한 층 쌓아 올린 성벽은 각기 다른 얼굴로 정겹게 서 있다. 푸른 이끼 속에서 새싹은 움을 틔우려고 발길질한다. 발아래 엎드린 동해가 유난히 굼실거리며 금방이라도 달려올 기세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낮은 집들이 어미 날개 아래 든 병아리 같다. 포근함이 밀려드는 오후다. 지나가는 여행객의 말소리가 외딴집의 담을 넘었는가 보다. 반가움에 뛰쳐나온 할머니가 여행객의 말을 받는다. 사람 구경하기가 얼마나 귀했으면 길손들의 발목을 잡을까. 할머니의 풍기는 인상으로 봐서 젊은 날은 담벼락에 심어둔 매화만큼이나 고고했을 것 같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읍성에 얽힌 전설을 엉거주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