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 몸을 싣는다. 아침을 깨우는 희붐한 안개가 드리워진 창에 머리를 기댄다. 철커덩 출발을 알리는 진동에 연이어 일정한 흔들림이 불안정한 심사를 위로해 준다. 눈을 감아 본다. 철컹철컹 일정한 침목의 간격 덕분인지 연속한 기계의 작동 덕분인지 치솟았던 마음자락이 수굿해진다. 한쪽으로 어깨가 살짝 기울어진다. 곡선 구간인가 보다. 해안선이 보이겠지 싶어 실눈을 하고 밖을 보니 하얗게 파도가 부서지고 있다. 출렁이며 깨어지는 것이 어디 파도뿐이겠냐며 굽어진 해송 한 그루가 참빗 햇살에 몸을 맡긴다. 다시 눈을 감는다. 햇살의 유희가 시작된다. 촘촘한 빛살, 느슨한 빛살,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빛살, 언덕에 막힌 빛살, 커튼 자락에 걸렸다 들어온 빛살, 움직임에 따라 밝음의 명도와 채도가 달라진다. 보랏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