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숙 2

조새 / 김희숙(2021 포항스틸에세이 대상)

바위에 부딪친 파도가 하얀 가루로 부서진다. 육지까지 올라올 것처럼 밀어붙이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뒷걸음치는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그제야 파도에 몸을 내어주었던 바위들이 바닷물 사이로 하나둘 되살아난다. 해안가 사람들이 오밀조밀 동네를 이루듯 갯바위에도 다닥다닥 갯것들이 모여 산다. 숨어 있던 게들이 슬그미 기어 나오고 엎드렸던 따개비와 굴들은 참았던 긴 숨을 토해낸다. 추위가 뻣속까지 스며드는데 낡은 가방을 멘 노인이 얼른거린다. 한 손에는 바구니를 들었고 다른 손에는 길쭉한 쇠갈고리를 쥐었다. 이 바위에서 저 돌 위로 겅중거린다. 적당한 자리를 물색했는지 굽은 허리를 더욱 깊숙이 구부린다. 돌돌 말아놓은 거뭇한 보따리 하나 바위에 얹어 놓은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손에 들린 것은 ..

쪽항아리/ 김희숙(2022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그가 움직인다. 손짓춤에 살결 같은 무명천이 내려서고 조리질에 참깨 올라오듯 누런 진흙물이 일어난다. 토닥거리며 매만지고 빠른 장단으로 휘몰아치니 항아리 안에 울돌목 회오리바람이 인다. 강바닥이 뒤집힌 듯한 너울에 정신이 혼미하다. 토해낸 물거품이 모여 수런거린다. 그가 젖은 천을 치켜들고 훑어 내리자 하늘 한 조각 떼어온 양 푸른 쪽물이 주르륵 쏟아진다. 흙을 빚어 태어났다. 잘록한 목선 타고 흘러내린 허리는 어린아이 두어 명을 거뜬히 품을 정도로 넉넉하고 진한 흑갈색 겉옷엔 빗금 몇 개 그어 멋을 부렸다. 풍만한 맵시는 미스 항아리 대회라도 나섰더라면 등위 안에 당당히 들었을 것이다. 닥치는 대로 녹여버릴 듯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살이 타들어가는 뜨거움을 견딜 때는 어느 종갓집 볕 드는 마당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