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옷을 벗는다. 썰물이 지나가자 갯벌이 덜퍽진 속살을 꺼내 보인다. 모래밭, 자갈밭에 이어 드러난 개펄은 뼈와 살과 근육으로 된 여체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맨바닥에 나신(裸身)으로 누워 촉촉한 물기를 햇볕에 말리는 중이다. 인기척에 놀란 방게들이 바다의 모공 속으로 잽싸게 파고든다. 피돌기가 왕성한 맨살을 긁는 것 같다. 은신처로 이만한 곳도 없을 성싶다. 억세고 치열하게 살아가기로는 인간이나 미물이나 다를 바 없다. 갯벌은 이 모든 생명을 그러안고 어머니처럼 묵묵히 견딜 뿐이다. 여기선 사람이 불청객이요, 이방인이다. 이곳은 서해바다. 해풍에 그을린 민낯의 제부도다. 만조 때는 꼼짝없이 갇혀버리는 섬. 물때를 모르고 떠난 게 불찰이었다. 우리는 바다가 내려다뵈는 창가에 앉아 ‘제부’로 시작되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