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자작나무숲에 고요가 내려앉았다. 그 흔하디 흔한 산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해찰궂은 겨울바람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해거름 자작나무 숲은 고즈넉이 숨을 죽이고 있다. 온통 희멀건 세상이다. 우중충한 하늘도, 발을 디디고 선 땅도, 빽빽이 늘어선 나무줄기도 모두 희끄무레하다. 원근이 사라진 유령의 나라인 듯, 농담 옅은 수묵화 속인 듯 아득하다. 소리도, 흔들림도 없는 자작나무 숲에는 어스름한 적막만이 스멀스멀 떠돌아다니고 있다. 태초의 세상처럼 하늘과 땅이 한 덩어리로 엉긴 혼돈 속에 나는 홀로 서 있다. 이 원초적 영역에 새겨질 내 흔적이 혹여 오점으로나 남지 않을까 숨결조차 조심스러워진다. 나무가 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숲 깊숙이 이끌려 든다. 멀리서는 그저 희부옇기만 하더니 줄기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