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편견-김근혜

테오리아2 2011. 12. 2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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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

 

                                                                                                 김 근 혜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할머니를 만났다. 추운 날씨와 상관없이 운이 좋았는지 유모차엔 하루치의 발품이 산처럼 높다랗다.

“저렇게 살 노인은 아닌데 쯧쯧”

지나가던 사회복지사가 한마디 던졌다. 지금은 쓰레기나 줍고 있지만 젊었을 때는 형편이 꽤나 괜찮았던 사람이라고 했다.

‘며칠 전에 보니까 고급승용차를 타고 가시던데 지금도 그만하면…….’ 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외양만 보고 사람을 섣불리 판단해서도 아니 되겠지만 상황을 모르면서 함부로 속단할 일은 아니어서 그냥 흘려버렸다.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행색으로 봐서는 헐거워진 허리띠를 채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중에는 허리띠 마지막 구멍에 고리를 채우는 분들도 더러 계신다는 풍문이 있다.

2년 동안 사무실을 제대로 치우지 못한 잡다한 것들로 씨름을 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파지를 가지러 오던 할머니가 어느 날 부터 갑자기 오시지 않았다. 퇴근하더라도 가져가시라고 사무실 밖, 한 쪽에 쌓아두었는데 주인을 기다리다 못해 지쳐버린 파지엔 먼지만 더부룩하다. 연세도 많고 날씨도 추워서 보이지 않으면 무슨 탈이라도 나지 않았을까 딸 같은 마음에 걱정이 되었다. 할머니의 발뒤꿈치도 경쾌하고 내 짐도 가벼워져 서로 돕는 마음이었는데 그날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니 반갑기도 하고 건강한 모습이라 기쁘기도 했다.

어느 날은 할머니에게 사무실을 맡겨두었더니 쓰고 있는 가재도구를 몽땅 가지고 가신 일이 생겼다. 직원들이랑 가끔 밥도 해먹고 라면이라도 끓일 요량으로 솥 몇 개, 수저 몇 벌 등을 구비해두었는데 깨끗이 닦아두지 않았더니 할머니 눈에는 고물로 보였던 모양이다. 사무실에서 가져간 가재도구가 쇠붙이라서 횡재를 했다고 전화로 감사의 말을 거듭했다. 하루 종일 다녀도 삼천 원 벌면 많이 벌고 공치는 날도 있다고 했다. 얼마 전에 고급승용차를 타고 가던 모습이 생각나서 심심파적으로 한다고 생각하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쓰는 것인데 가져갔냐고 힐책을 했다. 할머니는 미안해하며 안절부절 했다. 그 일 이후로는 대수롭지 않게 대하고 말았는데 후회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고급승용차는 급한 일이 있어서 잠시 얻어 탔나 보다.

한가로운 시간에 마침 할머니가 오셔서 사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흔의 노모, 정신적인 장애를 가진 딸과 함께 모두 과부이고 한 칸짜리 월세 방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아버님이 도의원을 지낸 덕분에 살림이 넉넉해서 대학교까지 나왔으며 남편도 의사였다고 했다. 남편은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죽고 딸은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충격으로 정신 이상이 왔다고 했다. 딸을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좋다는 병원은 다 다녔지만 허사였으며 남편이 남긴 재산마저 투자를 하다가 실패했다고 했다. 아버님 산소를 잘못 썼는지 우환이 끊이질 않고 있다며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역설했다. 딸은 네 살 짜리 아이 행동을 하며 대, 소변도 가릴 수 없는 처지이지만 돌볼 사람이 없어서 기저귀를 채워 둔다고 했다. 할머니도 당뇨에 합병증까지 와서 걷는 것도 힘들어 했다. 인간극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평범치 못한 얘기의 주인공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젠 먹고 살 길도 막막하여서 파지라도 줍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다고 하였다. 정부에서 혜택을 받는 최저 생활비로는 세 사람의 병원비로도 부족하다는 설명이었다.

사람에게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누구도 앞날에 닥칠 운명은 모른다지만 한숨만 나왔다. 오해했던 것이 미안해서 무엇이라도 더 드릴게 없는지 이리저리 살펴보며, 종이 한 장이라도 더 보태려 애써 본다. 할머니의 삶이 온전했더라면 지금처럼 쓰레기더미나 뒤지면서 살지는 않았으리라. 그런 일이 어느 누구에게 닥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으랴. 모든 불행이 그 할머니에게만 덮친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할머니의 삶도 세상살이에 바람이 머물다 꺾이기 전까지는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었으리라. 유모차를 타던 아이는 할머니가 되었고 그 유모차엔 할머니의 서러운 삶만이 삐걱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치우친 세상보기는 낙인효과에 이르기도 한다. 꼬리표가 달려 범죄인처럼 벗어나기 어려우니 말이다. 옛날에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죄인을 심문하거나 노비의 표시로 낙인을 찍는 경우가 있었다. 낙인이 새겨지면 도망도 가지 못하고 평생 그 상태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이 편견도 그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편향된 시각으로 인해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소외되어 세상을 비관하고 자살도 하게 되는 건 아닌지 씁쓸해진다. 내가 할머니를 오해해서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처럼.

비록 파지나 고물을 주워서 살고 있지만 건강해서 다행이라고 기뻐했다. 장애를 가진 딸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어머니도 자신에게는 한없이 소중하며 살아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쓰레기를 줍고 장애를 가졌다고 불행한 것은 아닐 터인데 편견의 틀 속에 갇혀서 왜곡된 눈이 되어버렸나 보다.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나 장애인은 세상이나 탓하고 비관이나 하며 살지 감사 따위는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보호나 동정이 그들을 위한 최선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몸이 불편하다거나 가진 것이 없어서 불편한 것 말고는 다른 사람들과 똑 같다는 인식을 하지 못한 것은 눈앞의 현상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서로의 상반된 생각의 차이가 정신적, 육체적 균형을 이루지 못해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조금만 괴로워도 죽을 것처럼 신이나 원망하고 살았던 내게 할머니의 말씀은 큰 깨우침이었다. 남들과 비교하며 덜 가진 것에 대해 투덜거리기나 했던 자신이 자꾸만 작아보였다. 할머니보다 경제적으로 조금 더 가졌다고 거만스러움을 보인 것 같아 부끄럽기까지 했다.

이 세상에 하찮은 존재는 없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쓰임새가 있는 존재로 태어났다. 누군가에겐 쓸모없는 것들이 어떤 사람들에겐 소중하게 사용되고 희망이 되고 있다. 얕은 잣대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할머니의 유모차를 보며 문득 깨닫게 된다. 할머니가 유용하게 사용하는 유모차조차도 버려졌을 땐 그 가치를 다했다고 생각해서 버렸겠지만 할머니에게는 생계유지에 필요한 도구로써 빛을 발하고 있지 않는가. 이렇듯 함부로 버린 도구조차도 쓸모가 있는데 사람이 쓸모없다면서 버리는 인면수심의 사람들이 있다. 부모가 노인이라고 학대하고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함부로 대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장애가 있는 자식을 고아원이나 시설에 버리는 경우나 늙은 부모님을 고려장시켜 죽어가면서 조차 자식의 손길을 받지도 못한 채 119에 의지하게 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만연해서 가슴이 아프다. 소중한 것은 늘 가까이 있는데도 고마움이나 가치를 모르고 함부로 쓰고 사람마저도 쉽게 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맑은 날에는 할머니의 유모차도, 할머니의 마음도 힘찰 것이다. 오늘처럼 눈이 내리는 날은 공치는 날일 텐데 마음 졸이고 계실 할머니를 생각하니 무심한 눈만 탓한다. 곧 강추위가 몰려온다고 하는데 천막집은 온전한지 쌀은 제대로 있는지 시간을 내서라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한 발 늦은 모양이다. 할머니가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알 수 없다는 냉랭한 주인의 말만 찬 바람에 웽웽거린다. 행성처럼 목적지도 없이 어느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떠돌고 계실지 숨이 헉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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