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타인앓이/김근혜

테오리아2 2022. 8. 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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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시로 다가오는 그 남자. 오늘도 어김없이 그 카페에 액자처럼 걸려 있다. 초췌한 몰골, 파란 입술, 근심어린 눈빛은 진이 다 빠져나가 속이 빈 고목 같다. 땅에 닿아야 할 뿌리가 허공에 떠 있다. 중력마저 무력하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낯선 만남을 하고 있다. 붙박이가 된 남자가 궁금해서 나도 자주 찾곤 한다. 우린 무성영화의 주인공이다. 난 그리스 전설에 나오는 잔혹한 도둑, 프로크루스테스다. 그 남자를 내 잣대에 올려놓고 늘이고 줄이고 한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재단하고 자르고, 깁고, 고쳐 쓴다.

 

그 남자 좌석 옆자리에서 커피를 마신다. 오후 서너 시경의 카페는 한산하다. 무료해서 커피잔에 꽂힌 빨대를 돌린다. 삶의 운전대라도 되는 양 좌회전했다가, 유턴하며 운전 연습을 한다. 그러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림자에 놀라서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커피를 저을 뿐인데 그 남자와 나의 세계가 돈다. 그 남자도 빨대를 빙빙 돌린다. 모든 것이 원만해지길 기도하며 만다라를 그리는 것일까. 그러다 남자는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간다. 식은 커피일망정 어떤 사람들의 위로보다 따뜻하지 않을까.

 

다른 옷을 걸치고 누군가를 모방해도 탓할 사람 없다. 신의 뜻을 거부하거나, 동의하거나 거절하거나, 응대해도 된다. 또 하루치의 명령을 하달받아 실행 중인지 없는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다. 잠시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 우리 시대의 가장家長 같다. 남편이라는 덧옷을 입고, 아버지라는 짐을 지고, 누군가의 아들로 잠시 구부러지는 중이다. 마음은 어두운데 카페의 조명은 그의 숨은 그림자까지 환하게 비춘다. 밝은 빛만큼 그 남자는 더 어둠 속에 갇힌다. 등을 붙이고 부딪치며 같이 울어줄 순 없지만, 그의 아픔을 공감해 보려 한다.

 

 

 

 

 

 

 

 

그 남자와 나는 평행선 위의 두 점이다. 우리 사이엔 무수한 점들이 내포되어 있다. 그 점들이 이어져서 잠시라도 만난 건 아닐까. 두 점 사이의 거리는 아마도 36억 년 전 하고도 나이를 더해야 하는 숫자일 것이다. 돌다리, 외나무다리를 흔들리면서 용케 건너왔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이 카페에서 접점이 된 것이다.

 

나의 조리개가 힐끗 그에게로 간다. 그의 시선은 어느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나의 눈과 마주치지 않는다. 그저 멍하게 있다. 나의 온기나 체취가 남아 있을 그 자리를 매일 가슴 아파하며 맴돌던 누군가를 닮았다.

 

아픔을 스스로 다독이는 남자. 기댈 곳조차 없어 보여 짠함으로 다가오는 사람. 그 카페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 남자를 품기 위해서일 거다. 남자는 허둥거리다 커피를 엎지른다. 살아온 삶이 엎어진 것처럼 당황한다. 설마 얼룩진 옷 때문에 하늘에 삿대질할까, 아니면 민망해하며 삶에 미안해할까. “얼룩지지 않은 생이 어디 있으랴.”, ‘꽃샘추위 정도는 이길 수 있다.’며 덤덤한 얼굴로 바지를 닦는 것 같다. 그러다 허탈한지 창밖을 내다보며 허허거린다.

 

잠시나마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삶의 의무나, 간섭, 시선 따윈 의식하지 않아도 되니까. 직장에서의 상, 하 관계,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나 자식이 아닌 오로지 나만을 위해 직함을 버릴 수 있는 곳. 직립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 여기서만큼은 세상에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당당해도 되지 않을까.

 

늘 새롭게 다가오는 허들을 뛰어넘어야 하는 긴장과 압박감이 힘들게 한다. 그 남자도 버티다 못해 잠시 숨을 곳이 필요했을 거야. 치고 들어오는 대열에서 밀린 쓰라림을 가족 몰래 삼키고 있을지도 모르지. 삶을 버겁게 하던 단어를 도려내면서 잊으려고 몸부림칠 거야. 마스크 안에 감춰두었던 폐를 간신히 꺼내 이곳에서 숨을 쉴 거야.

 

전자계산기가 탁자 위에 있고 무언가를 적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아직도 계산할 게 남아 있는지. 초점을 잃은 채로 어딘가를 주시한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렇게 막연하게 무모한 기다림을 지속한다. 무대에 오르기 위해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까지 대기해야 하는 무용수나 연극배우 같다. 조바심이 느껴진다. 안타까움이 든다. 저러다 불러줄 곳이 없다고 해도 세상의 끈을 놓지 않길 조용히 기도해 본다.

 

그 카페에 오기까지 고단한 일이 많았을 거야. 생의 고갯마루를 만나 잠시 숨을 곳이 필요했을 거야. 차마 남자라서 누구에게 눈물 보일 수 없는 마음을 독백으로 쏟아냈을 거야. 하루분의 희망이라도 짊어지고 싶은 마음이 컸을 거야. 아픈 발을 미화하며 절룩거리는 기억을 지우고 싶을 거야. 해가 뉘엿해지면 가장假裝된 어깨를 펴고 가장家長의 자리로 회귀할 거야.

그 남자의 생이 무너질 것 같으면 잠시 기댈 어깨를 빌려주고 싶어. 길 가다 넘어진 사람 그저 보고 갈 수 없어 일으켜주는 것처럼. 그게 빚을 지우는 건 아니잖아. 내가 어깨를 빌려줌으로써 그 남자가 버틸 수 있다면 다행이지. 선한 사마리아인이 돼보는 거야.

 

한 끈으로 묶였던 남편의 삶도 카페의 남자 같을 때가 있었다.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세상에 고개 숙이는 날이 많아졌다. 서류뭉치를 선물처럼 싸 들고 온 날은 서재에 불이 꺼지지 않았다. 가족 앞에선 언제나 당당한 듯 꼿꼿이 허리를 폈지만, 예금통장 앞에선 한숨을 쉬었다. 속울음조차 울 수 없는 그의 마음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안 것이 미안했다. 기둥처럼 직립한 날은 기분이 좋은지 케이크를 사 들고 왔었다. 삶이 힘들 땐 그 남자처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눈물을 흘렸을지 모른다. 남편의 흔들리는 어깨를 지금이라도 추켜세워 주고 싶다.

 

그 남자는 바람이 되려는 걸까. 뭉쳐있던 시간을 접었다 편다. 오늘 저녁은 카페 문을 열고 조심스레 밖으로 나온다. 낮고 무거운 걸음이다. 첩첩 어둠이 그를 따라가다 횡단보도를 건넌다. 갑옷을 입은 그의 등 뒤에서 생의 비늘이 툭툭 떨어진다.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그 남자의 베일을 벗긴다. 남편의 삶이 보인다. 남편의 비애가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가장이 보인다.

 

-2022년 한국문인 6월호. 선수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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