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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7회 목포문학상 소설 남도작가상 /여름 이야기/김현임

테오리아2 2016. 1. 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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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목포문학상 소설

남도작가상
여름 이야기 / 김현임


동이 트기 무섭게 참깨를 솎았다. 여인네의 허연 속살처럼 통통하게 물오른 뿌리가 비닐 멀칭 위에 수북하다. 흙 고랑에 두면 비록 식물의 뿌리일망정 제 머물던 흙으로 돌아가려 아등바등 안간힘 할 위험성이 있단 말인가. 어떤 상황이건 그것이 더 이상 지속될 희망이 없다면 포기와 체념은 빠를수록 좋으리라. 불가능을 향한 무모한 착각으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본디 참깨는 두 번 시집을 안 간다고 하지 않던가. 모종 옮김을 거치면 더욱 무성히 가지 뻗는 들깨와는 달랐다. 그런데도 초여름 따가운 볕에 대책 없이 말라비틀어질 새순들의 처지가 가련해 상을 찌푸린다.
등허리에 주르르 흘러내리는 땀, 뒷목을 달구는 따가운 햇살의 기세다. 솎아줄 고랑이 아직도 다섯줄이 남았으나 이미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볕살을 이길 도리가 없다. 해거름 작업을 위해 호미는 흙을 털어 밭 귀퉁이에 잘 챙겨 두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서 먹는 늦은 아침은 시장기에도 불구하고 입맛에 쓰다. 설거지를 마치고 젖은 행주의 물기를 털어 널고 나니 버릇처럼 커피가 당긴다. 서너 개 남짓한 그릇들을 정리해 찬장에 넣으려다 빨간색 머그잔이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지던 그 순간, 문득 전화 속 명주의 말이 생각났다.
“다른 건 몰라도 다달이 100만원은 꼬박꼬박 챙겨 준다네”
서너 해 전 지방대학 교수였던 남편을 잃었다는 명주, 독서실을 해볼까, 프랜차이즈 빵집을 해볼까, 몇 년 묵혀두면 장래성이 보장되는 적당한 투자처는 어디 없느냐, 한동안 나를 비롯해 주변사람들을 어지간히 휘저었고 다녔던 그녀다.
하지만 ‘물속에서는 피라냐를 조심하고 땅 위에서는 거짓말쟁이를 조심하라’가 사학과 교수였던 남편의 유지였을까. 처음엔 졸지에 변고를 당한 회원을 향한 측은지심에 성의를 다하여, 아니 흡사 그녀의 충직한 하수인처럼 말품, 입품 팔아가며 온갖 정보조사를 샅샅이 마친 후, 그 일에 대한 상세보고를 하면 그래, 그래 맞장구를 치며 금방이라도 그 일에 뛰어들듯 적극성을 보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시큰둥한 무반응에 묵묵부답. 상대의 침과 진이 다 마를 시간에 이를 즈음 불쑥 나타나 도리질 한 번이나 전화통고 한 번으로 끝이었다. 내가 언제 그대와 그런 뜨거운 말을 한 적 있었더냐, 마치 지긋지긋 끌어오던 그동안의 사련(邪戀)을 가차 없이 정리하는 여자 같았다고나 할까.
어느 사이 청록회 회원들 사이에선 명주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다.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명주는 귀농을 꿈꾸는 모임인 청록회 멤버 모두가 잊을 만한 시점의 절묘한 간격을 두고 명주는 구원 요청의 손을 내밀었다. 물론 손을 잡으려다 결정적 순간에 저 멀리 허공을 쳐다보며 딴청을 부리는 것 또한 변함이 없었지만. 어쨌든 모두들 제 풀에 떨어져 나가 그 누구도 그녀를 상대해주지 않는 눈치였다.
명주는 내가 놀리고 있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어떻게 알았을까. 함께 사무실을 내보자고 제의했다. 명색이 십여 년 넘게 벼르던 귀농이었다. 허름한 시골집과 그 귀퉁이에 딸린 손바닥만 한 땅을 구입해 풀과 씨름한 세월이 어느덧 5년. 봉숭아, 맨드라미, 분꽃 같은 토종 꽃이 땅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손수 기른 채소와 꽃들을 보며 글을 쓰며 살겠다는 애초의 유유자적은 아득히 먼 일이었다. 경제활동을 위해 나 역시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아니, 돈이 될 만한 일이라면 뭐라도 해봐야했을 만큼 다급하기도 했다.
어쩌다 써 준 탄원서가 시작이었다. 배타고 망망대해를 누빈 3년, 그러나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며 하소연하던 뱃사람의 밀린 체불금을 한꺼번에 받게 한 글의 위력이었다. 하지만 그 대단한 공로를 이룬 나 역시 성사 후 상대를 마주 본 적조차 없었으니 일에 대한 수고료는커녕, 고맙다는 답례의 인사 한 마디도 받지 못했다. 다만 그 일이 있은 후론 어떻게 알았는지 그런 류의 비슷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찾아 왔다.
허우대만 멀쩡할 뿐 가진 거라고는 달랑 뭐 두 쪽뿐인 남자를 만나 아들 없는 친정집 땅에 고생고생해서 과수원을 일궈놓으니 그동안 사과궤짝 모서리도 손끝으로도 스친 적 없던 위인이 제 앞으로 재산을 모조리 옮겨 놓고 이혼을 요구했다던가. 그녀가 쏟아내는 장황한 넋두리 속에서 건져낸 알갱이다. 적수공권(赤手空拳)의 위인을 비록 좁은 지역이라고는 하나 두 번의 연임을 성공시킨 건 전적으로 아내의 공로였다. 평생 양복 차려 입고 바깥으로만 내도는 남편 대신 뼈마디 부서지도록 매달린 근면 하나로 이룬 부(富)를 남편의 위상 세우기에 아낌없이 투자한 조강지처였다. 그런 그녀를 버리고 열일곱 살 연하의 새 아내와 본처가 지어놓은 집까지 차지하고 알콩달콩 신혼의 꿈에 빠져 있다는 파렴치한 남자를 탄핵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지역의 단체장을 지낸 남자의 알량한 명예를 건드리자 의외로 화해의 실마리가 쉽게 풀렸다. 그 일 역시도 다급한 뭐 누러 갈 때와 누고 난 후가 다르다던 그 식상된 말을 확인시켜 주었다. 모든 것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기 무섭게 여자는 일체의 연락을 끊었다. 머리 허연 노인은 소화(昭和) 몇 년에 일제가 발행한 빛바랜 보험 증권을 내밀며 그 돈을 받을 길을 모색하는 글을 써달라며 조르기도 하고. 책상 앞에서 글 쓰는 일이라면 워낙 이것저것 가리지 않았던 까닭에 대다수 들어온 일감이라는 게 쉽사리 해결되지 않아 해묵힌 먼지내 풀풀 나는 탄원서들을 대필해 주고받는 쥐꼬리만큼의 고료 정도였다.
사학비리로 빼앗긴 잃어버린 학교를 되찾는 일, 그러니까 설립자에게 씌워진 치부(致富)라는 오욕스런 얼룩도 그렇고 20년 세월 동안 빼앗긴 학교를 되찾겠다는, 자못 의협심 충만한 열혈집단에 소속된 건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성격상 강성(强聲)이기 마련인 그들의 대자보, 또한 일의 특성 상 지역 매체 모두가 거절에 거절을 당하는 문구를 수정 작성하는 일에도 어지간히 진력이 났다. 훗날 일등 공신으로 등극해 받을 논공행상이야 어찌 되건 차일피일 미뤄지는 일에 대한 보수도 문제는 문제였다. 하긴 법정에 제출할 서류의 복사비도 빠듯한 형편에 글 값이 대수일까. 매일매일 결사항쟁에 나서는 비밀독립운동본부 같은 사무실 분위기 상 차마 내색조차 못하다가 결국 제풀에 떨어져 나오고 말았다.
사무실은 제가 마련하겠으니 언니는 자격증만 걸면 된다는 명주의 충동질에 사무실 개설 전 요식처럼 거쳐야하는 한 달 넘는 사전교육까지 받았다. 그런데 더위를 무릅쓰고 사무실 자리를 알아보러 다닐 즈음 연락이 불통되더니 결국 일언지하 불가의 전화 통고를 받았다. 그리곤 연락부절이 2년 여, 그런 명주가 자신 역시 귀농을 결심했다며 내 집 근처 땅을 보러 오겠다는 뜻밖의 전화를 걸어 온 게 일주일 전이다. 그저 건성으로 대답해주었을 뿐, 그녀의 약속마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약속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 운동화 뒤축을 꺾어 신은 잠바차림의 명주가 왔다. 화장기 없는 푸석한 얼굴의 그녀는 나와 약속이 있다는 걸 깜빡 잊고 늦잠을 자다 아침밥을 걸렀다고 했다. 학교에선 학과로도 그 방면의 내로라는 실력자였다던 명주의 남편은 살아생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 갖은 수발을 다 들어주던 자상한 남자이기도 했다던가. 단 한 번 아내에게 한 쪽으로 비켜 앉으란 소릴 해 본적 없다는, 좋은 남편 만난 여자들의 지루한 단골 멘트를 한 시간여 떠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름지기 아내는 아주 얇은 재질로 빚은, 티파니 명품의 크리스털 유리잔 다루듯 해야 합니다.’라는 전도지의 문구가 스쳐갔던가.
서둘러 나물을 무치고 국을 끓이는 동안 미처 채우지 못한 잠을 보충하려는 듯 방 한가운데 털썩 큰 대자로 누워 잠을 청하는 명주. 하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지 한없이 편안하고 게을러터진, 자신들 방식의 삶을 변함없이 고수하는 여자들은 있는 법이니까. 때 이른 점심에 커피까지 마시고도 정작 목적으로 온 땅이나 집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다. 대신해 이번엔 열을 올려 또 다시 남자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 남자의 얘기는 내게 별 흥미를 끌지 못하고. 나는 탁자 밑에 수첩을 꺼내 놓고 내가 쓴 글인지 어디선가 발췌해 놓은 글인지 출처가 불분명한 문구를 읽었다.
‘그녀는 데리고 놀기 좋았다.
순전히 벗으로, 그리고 동정심...
그녀는
슬픈 짐승이나
무언가 잘못된 사람
부러진 나무나
길 잃은 짐승
사나운 짐승에게
자신을 내던질 그런 상태의 여자’
여기까지 읽다가 무슨 말인가를 반문하던 명주와 눈이 마주쳤다. 물론 나는 명주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있지 않았으니 순간 당황 했을 밖에다. 그러나 제 얘기에 빠진 사람들의 대다수가 그렇듯 제 얘기에 제가 빠져 상대의 반응은 그다지 상관이 없다는 무심한 얼굴에 안심하며 다음 페이지를 펼쳐 눈으로 훑는다.
‘열정이란 실로 두려운 것,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 이 대목은 불펜으로 두 줄을 그어 ‘아니 치우치게 되는 것’이라고 수정해 놓았으니 내가 썼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열정(熱情)이라는 제목 하에 놓인 다음 구절을 흥미롭게 읽는다. ‘상처가 남는 것,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기는 것, 버릇없는 것, 다스릴 수 없는 마음, 성급한 것, 진정치 못하고 내달려야 하는 것’. 하고는 마지막 ‘전염되는 것’으로 마무리 되어 내 것인지 누군가의 것을 발췌해 두었는지 모를 열정에 대한 정의는 끝났다. 누가 썼으면 무슨 대수랴, 동상이몽이라더니 열변을 토하는 명주를 곁에 두고 나는 나대로 한 남자의 생각에 빠진다.
시골부자에 60초반 나이의 건장한 농부. 상처한 지 1년인데 구태여 혼인신고를 할 필요는 없고, 땅이라던가, 집이라던가, 그러니까 중노인 홀아비들의 재혼 조건에 공공연히 붙기 마련인 여자 측에게 지불하는 선불형식의 경제적 배려는 일체 생략한단다. 대신해 함께 사는 동안 한 달에 100만원씩은 반드시 지급해 주겠다는 조건을 가진 홀아비를 명주는 내게 열심히 설명한다. 농사가 많기는 해도 모두 기계가 할 것이고 밭농사야 겨우 자급자족할 정도이니 농사일에 대한 큰 부담 가질 건 없고 가끔 농약 치는 곁에서 줄이라도 잡아 거들어주면 금상첨화요,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살림을 합칠 수 있으면 좋겠단다.
‘당장?’ 건성으로나마 듣고 있었던가. 나는 당장이라는 그 단어에 고개가 바짝 쳐들어졌다. 그리고 ‘당장?’하고 속 반문까지 하며 상을 찌푸린다. 100만원으로 규정지은 돈의 액수도 그렇지만 그 ‘당장’이라는 말이 내게 덜컥 체증처럼 걸려 때 아닌 마른기침이 났다. 내게 아직도 낯 선 말이, 아니 걸리적거리는 말들이 있었던가. 말 그대로 산전수전(山戰水戰)에 공중전(空中戰)까지 겪은 나이이니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온갖 말들이 스쳐간 귀가 아닌가. 어느덧 이순(耳順)이 코앞, 하지만 내 귀는 아직 순해질 준비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들이라고 하나 생판 모른 남녀가 보자마자 살림을 합친다? 그건 아니다며 속으로 발끈한다. 홀몸인 언니가 무얼 망설이냐 반문하며 이런저런 대꾸도 없는 내 시큰둥한 반응에 대학생 둘에 중학생 늦둥이까지 도합 셋인 애들만 아니면 당장이라도 자신이 가고 싶다했던가.

그 사람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피는 꽃 함께 할 수 없고
지는 꽃 함께 할 수 없네
묻노니 그대 있는 곳
꽃 피고 꽃 질 때마다
마지막 문구가 ‘欲問常思處 花開花落時’였던가, 명확치도 않은 한시구절에 골똘해 본다.
무슨, 무슨 갖가지 명목이 붙은 송사가 끊임이 없고 신용불량 상태의 경제사정은 도대체 끝이 보이지 않는, 그러고 보니 그야말로 돌무더기 황무지만을 가졌던 남자. 그 와중에 몸에 배어버린 거짓말습성은 그의 인생의 길목에 발목 걸려 넘어지게 할 정도로 무성했던 잡초들 아니었던가. 나는 명주의 말대로 그의 곁에서 잠시 약통 줄이나마 잡아 거들어 준 여자였나?
명주는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공인중개사 사무실 거부에 얽힌 이러저러한, 그러니까 내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늘어놓았다. 그렇다고 정중한 어투의 사과도 아니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른 오류들을 자신이 편리한대로 수정하여 저장한다던가. 장황한 명주의 변명 중에 내가 건질 거라곤 무언가 불안해 보이는 얼굴의 나를 좀체 믿을 수 없어 동업을 포기했다는 말이었다. 정작 내 집의 방문 목적이었던 땅도 집도 보지 않은 채 명주는 한참을 더 떠들고 떠들다가 저녁밥까지 먹고서야 제 운동화 뒤축을 꺾어 신고 돌아갔다. 갈수록 사람에게 지친다. 가끔 손끝 하나 꼼짝할 수 없도록 지친 몸과는 달리 정신은 날 바짝 벼린 칼끝처럼 예민해지는 게 신기하지만.
마당이 내다보이는 마루로 나와 불을 켰다. 평소보다 진하게 탄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바로 그 때 일부러 찾으려고 한 것처럼 눈에 들어 온 잔 하나. 붉은 색 머그잔은 제라늄 화분 곁에 있었다. 커피를 마시다가 화초의 시든 이파리들이 눈에 들어왔겠지. 그 이파리들을 떼어 내주다가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조차 그만 망각하고 놓아 둔 것이다. 햇볕에 물기가 졸아 흡사 걸쭉한 조청처럼 보이는 커피가 들어있는 붉은 머그잔과 간신히 줄기에 매달린 시든 꽃이 이루는 묘한 조화, 그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무언가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놀라 서둘러 잔을 씻어 와 커피를 탔다.
내 자체만으로도 불안해 보였노라는 명주의 말을,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그 말을 되새겨본다. ‘정서불안’이라는 문구가 적어져 있던 여고시절 학적부를 다시 대한 듯 뜨끔했다. 그리고 설탕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커피는 내 삶처럼 쓰다는 생각이 스친 순간. 일순 치올라오는 뜨거운 열패감을 떨치려 FM을 틀었다. 사랑이라는 제목이 들어가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내게 아직도 꿈꾸는 사랑이 있는가, 아직도 그런 걸 꿈꾼다면 나는 분명 나사가 하나 부족한 여자다. 여전히 그런 꿈을 꾼다면 말이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개가 홰홰 내둘러지는 남자, 그런데도 그가 준 이 시뻘건 머그잔을 커피를 마실 때마다 고집하는 이유는 무언가. 나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머그잔을 천천히 쓰다듬다 놀라 저만큼 밀쳐놓았다.

‘사랑, 그 치명적인 깊이의 늪. 남의 연애관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거나 조언을 하고 싶진 않다. 욕구의 안쪽을 들여다보면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핵심욕구를 만날 것, 모든 연애는 자기 자아의 결핍과 연관되어 있다. 내 안에 무엇이 부족해서 상대로부터 무엇을 찾아내서 강렬한 화학반응으로 하나가 되려고 하는지. 그 지점에 현미경을 들이대보라. 나를 온전히 무장해제 시키는 완벽한 연애상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능력이 갖춰진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관심과 도전, 시행착오를 통해 사랑에 대한 교훈과 혜안을 얻어라’

노트 속 이런 구절들을 읽으면서 나는 연신 투덜댄다. 흥! 대체 누구야? 이따위 온갖 고상한 말의 교훈은 사절이라는 듯. 힘들 때면 차라리 아무 쓸모없는 연속극으로 그 시간들을 소비하는 게 좋았다. 눈만은 즐거운, 그때, 그때 몸에는 해롭지만 구미 당기는 음식처럼 다양한 인간상을 보여주는 지리멸렬한 그 드라마들 말이다. 이런 수렁에 또 다시 빠진 이유는 뭘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온 모든 상식과 믿음을 깨트리는 말도 안 되는 상대에게 말이다.
엄마가 남편과의 결혼을 말리고 말리며 들이민 상대였다. 비록 상처(喪妻)를 했다지만 미원을 바케츠로 들여놓을 만큼 넘치는 돈이 있지 않냐, 생전 해주지 않던 원피스를 맞춰주며 은근히 꼬드기다가, 급기야 다 큰 딸을 때리며 윽박지르던 엄마. 밥풀로 잉어 낚듯 딸을 미끼삼아 갈수록 신산함으로 치닫는 당신의 팔자를 고쳐보려던 엄마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당신이 내 결혼의 일등공신이었다는 것을 짐작도 못 했을 것이다. 맞다. 엄마의 극렬한 반대가 도화선이었다.
세놓은 가게의 동생과 얘길, 정말 한 지붕 밑에 사는 또래로서 아는 치레를 하고 몇 마디 얘길 나눴을 뿐인데 엄마가 보인 과민반응은 도를 넘었다. 저 유명한 인도의 신분 차, 그러니까 왕족이 불가촉천민과 손 마주잡은 현장을 본 것처럼. 바로 그때 내 마음은 완전히 기울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나. 잘못된 방향만을 안내하던 지도자에게 반발해 그가 가리키는 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기는 이탈자 대원의 반발심 말이다. 한 번의 풋사랑을 실패한 적이 있을 뿐 나는 세상 경험이 거의 전무했던 스물 셋이었고, 어느 순간 나는 나보다 더 가엾은 처지의 그에게 연민 섞인 사랑? 아무튼 그 비슷한 감정에 빠졌다.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긴 더부살이 같았다. 그런 행태의 삶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선택했다고는 하나 남편은 내겐 맨 처음 남자요, 사랑이라면 사랑이었다. 부모도 변변한 일가붙이도 없는 가엾은 처지, 가난하지만 바르고 온순한 청년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비웃듯 태도가 돌변했다. 궁둥이를 바닥에 붙이면 술을 마셔야할 정도로 남편은 전형적인 알콜중독 증세였다. 자신이 가진 특성에 맞는 남자를 선택하는 게 여자라던가. 그러고 보니 처음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표정을 하다가 이내 욕설을 퍼붓던 엄마가 공헌자다.
이 곳 저 곳을 전전하던 직장도 다 술 탓이었다. 가정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술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갉아 무너뜨리는 지 도통 관심 밖이었다. 매일 술상을 차리고 취해서 때리고 부수다가 살을 섞는, 살을 섞는다는 따위의 이 말은 참으로 마땅치 않다. 요즘 들어 적당한 단어조차 도통 생각나지 않는지. 걸핏하면 머릿속이 갑자기 전원 나간 텔레비전 화면처럼 까맣게 된다. ‘섞는다’를 대체할 말이 무얼까. 한참을 궁리하다 겨우 생각 난 말이 ‘잠을 잤다’다. 하지만 그것도 적당한 대체어가 아니다. 우린 별 일 없이 잔 게 아니었다. 잠자리 들기 까지 지루했던 시간들이 1막이었다면 드디어 처참한 내용의 2막이 비로소 시작되었으니까. 맞고 욕설을 들어가며 버티다가 결국 투항하듯 남편의 요구를 들어준 후 극심한 모욕감에 시달리다 쪼그려 앉은 채 겨우 잠을 청하는. 2막은 그러니까 비련의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연극의 절정이었다. 그러니 어찌 단순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잔다는 말이 해당되겠는가.
그게 대다수 내 하루의 수순이었다. 때론 고막이, 때론 입술이 터져나가는 폭력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내게 쏟아지던 무자비한 남편의 욕설, 아니 그 욕설보다 참을 수 없는 게 바로 그 남편과의 잠자리였다. 술 냄새, 마늘 냄새, 땀 냄새가 뒤섞인 캄캄하고 좁은 방에서 밤마다 벌어지는 낯부끄러운 행위의 모욕감이라니. 이런 게 사랑의 결과라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다. 견딜 수 없는 수치감과 모멸감이 뒤섞인, 내 자신의 의지가 너무나 나약해 나를 보호하는 데도 거의 쓸모가 없다는 무능한 나를 향한 부피 큰 낭패감도 함께였다. 감당 못할 무게에 허덕이다 마침내 발을 꺾인 짐승인 듯, 부러 신음을 토해 내던 영악한 나.
동네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며 한 달에 두어 번 오기도 힘든 그를, 맞아, 언제 내가 남편을 기다렸나? 아니 가슴 졸이며 설레었던 날들의 기억을 말끔히 지워져가는 나날이었다. 그래, 나는 결혼 후 무엇보다 혼자만의 방을 가진 게 좋았다. 그런데 현장에 머물던 직장을 그만 두고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매일이 불협화음의 연속. 어느 밤, 내 위에서 끙끙 대는 남편의 머리를 곁의 쓰레기통이라도 집어 휘갈기고 싶었지만 내 입에서 겨우 나온 말이라는 것은 빨리 끝내라였다. 뺨을 후려치며 니가 서둘러 다른 남자 받아야할 술집여자냐고 화대(花代) 아까운 손님처럼 으름장을 놓던, 남편의 술 취한 목소리가 엊저녁인 듯 쟁쟁하다.
나는 머리를 마구 흔든다. 뾰쪽하게 달군 불화살이 가슴에 박힌 듯 뜨겁고 아린 통증이 스치듯 지나간다. 금방 단말마 비명이라도 터질 듯해 입을 감쳐물었다. 그러다가 여우 피하니 범 만나더라던 말이 떠올라 피식 웃는다. 비록 연애기간은 아니었지만 4년이라면 꽤나 긴 탐색이 아니었던가. 아버지 명의로 된 마지막 집이 된 변두리 상가 건물, 그 곳에 세 들어있던 형의 식당 일을 거들던 고단한 눈빛의 청년, 도망친 사슴이 뛰어든 짚더미가 공교롭게도 불섶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남편도 아버지도 이제 망인, 죽음은 모든 허물을 덮고 관용을 베풀지 않던가. 하니 부관참시 하듯 뒤늦게 들춰 내 그들을 난도질할 까닭도 없다.
아버지는 술은 딱 세 잔이었지만 폭언과 폭력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양반이었다. 돈도, 여자도 당신 마음껏 주무르는 지나친 자신감에서였을까. 매사 당신 기분 내키는 대로였다. 부모가 반팔자라더니 유년을 비롯해 내 삶의 전반적인 행태는 우울 일변도였다. 엄밀한 시차로 따지자면 이 부분이 더 앞이 되겠지만. 공장도, 벌이는 사업도 내리막길, 그 벼랑길에서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택한 게 숙박업이었다. 숙박, 말 그대로 머물 宿, 배댈 泊이니 떠돌던 인생들이 잠시 고단한 닻을 내리고 한 숨 쉬다 가는 곳. 70년 대 여관은 천차만별의 사람이 묵었다. 전국체전을 치른 선수들이 마루 끝에 나란히 엎드려 패배의 대가로 모진 매를 맞는 풍경도 연출되기도 하였고 낯 선 이방의 거리를 찾아 온 외국인의 나룻배만큼 큰 구두가 현관 앞에 놓여 있기도 하고, 해마다 벚꽃 흐드러진 봄이면 혼자 와서 패티 김의 사월이 가면을 온 집안 쿵쿵 울리는 볼륨으로 틀어놓고 사흘 내내 아득한 표정을 짓던 중년 남자가 머물기도 했던. 손님들에게는 친절하고 다정했는지 모르지만 가족들에게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던 다정여관,
무자비한 폭군에 가깝던 아버지에겐 딸들이란 식모들과 동급이었다.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닌다는 것만 빼놓고 날마다 삶아 빨아 갈아대야 하는 이불호청 꿰매기나 여관방청소 등등, 방이 서른 개 넘는 여관운영에 필수불가결인 노동력동원에서 동류 취급이었다는 얘기다. 해서 내놓고 사춘기앓이를 할 것도, 할 수도 없었지만 내 나이 목하 열일곱 아니었던가, 예민한 눈에 포착된 남과 여, 그것도 일종의 사랑의 풍경이었을 터다.
그러고 보니 다정여관에서 목격한 숱한 삽화들 중 사랑의 풍경, 그 부분만 되돌려 보기도 벅차다. 둘이 들어가 조용하던, 이불과 두 개의 베개뿐인 방. 라디오 조차 한 대도 없는데 종일 지루하지도 않는지 남녀 딱 두 사람만 있을 방 안이 자못 궁금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게 어쩐 까닭인지 그 부분에 관한 한 먹통, 무지였다. 하니 단 한 번도 불결하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들고 날 때 빼곤 하나 같이 고즈넉하리만큼 조용한 건 장기 투숙 커플들의 방도 마찬가지였다. 단 예외가 있다면 나와 두 살 정도 차이 나 보이던 어린 커플의 떠들썩하고 적나라한 애정행각이었다.
햇볕 드는 마루 쪽 그들의 방은 건너편 안집 내 방과 마주 보였다. 사내를 제 무릎에 눕혀놓고 연신 깔깔대며 마사지를 해주던 계집애의 즐거운 표정이라니! 어느 배우들이 그만큼 예뻤을까. 하얀 목덜미의 계집애와 너른 이마를 가진 쌍꺼풀 짙은 부리부리한 눈의 머스마, 아슬아슬하고 파격적인 원색 옷 사이로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던 그들의 풋풋한 육체, 그것은 몰래 훔쳐보는 나까지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지극히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보이던 그들로 하여 음울하던 다정여관의 공기마저 산뜻하게 뒤바뀔 만큼이었으니까. 언젠가 나도 한 남자를 저렇게 해주고 싶다. 언젠가 나도 이 집을 벗어나 저렇게 눈 마주하며 맘껏 웃음 나눌 상대를 갖고 말리라 벼르게 하던.
뚱뚱한 이발소 아저씨와 딸 하나와 혼자 살던 유달리 흰 피부를 가졌던 엄마친구 순이 엄마, 큰 키에도 언제나 하이힐을 신던 젊은 여자와 키가 겨우 그녀의 목에 차던 늙은 남자, 그런 커플들은 일주일에 두어 번 꼴로 언제나 낮에만 왔다. 사랑이란 자신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사람을 그 상태 그대로 기뻐하며 받아들이는 것이라니 다른 건 모르지만 외형상 도대체 어울리지 않던 그들은 나름대로 그런 사랑의 정석을 보인 셈인가. 보기만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엄마와 아버지완 달리 서로를 향해 다정하고 다정하기 이를 데 없는 눈빛을 교환했다. 그 후로도 나는 몇 커플을 더 목격했을까.
어찌 고운 풍광만 펼쳐졌을까. 남자와 여자가 만나 어울리는 일이 결코 재미있고 아름다운 풍경만 연출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깊이 각인 시켜 준 사건도 터졌다. 나와 한 살 터울 지는 외갓집 오빠, ‘조오바’란 이름으로 불리며 밤마다 특유의 큰 눈이 벌겋게 쏟아지는 잠을 쫓아가며 손님을 맞았다. 그런 날 중 어느 날이던가. 열여덟 오빠가, 실은 오빠라는 호칭을 직접 써 본 적은 없었다. 우린 둘 다 어색해 서로를 적당히 피해가며 지냈으니까. 워낙에 말 수도 없는 데다 무엇이 그리 불만인지 내겐 퉁명스런 표정으로 일관하던 오빠가 아침부터 한 여자에게 일방적으로 뺨을 후려 맞고 있었다.
“야, 이 개**야, 돈 내놔. 풋내 나는 어린 자식이 재미를 봤으면 재미 본 값을 치러야할 것 아냐”
마른 체형의 여자는 서른 중반 넘긴, 우리 집에 자주 드나드는 단골아가씨이기도 했다. 여자는 바짝 약 오른 뱀처럼 고개를 쳐들고 소릴 질렀다. 양 쪽 입가에 채 닦아내지 않은 치약 같은 거품을 매달고 팔을 휘두를 때마다 단추 풀린 블라우스 사이로 건포도 같은 젖꼭지가 오르내렸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푹 숙인 채 뚝 뚝 굵은 눈물만 마루에 떨구던 오빠. 내가 일생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어른이신 외숙모의 귀한 장남 아닌가. 맞다. 그로부터 스무 해 쯤 후던가. 유난히 작은 키, 유난히 작은 발의 외숙모가 돌아가시자 이무도 몰래 외숙모의 사진 한 장과 버선 한 벌을 훔쳐왔을 정도로 나는 외숙모를 좋아했다. 그건 그렇고 그날로 다시 돌아가, 어쩐 까닭인지 오빠는 고모인 엄마에게도 죽을죄를 지은 죄인처럼 끽 소리도 못하고 흠씬 맞았다. 그때도 나는 우리 엄마 말처럼 오빠가 싸가지 없고 더러운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당시 내가 아는 상식으론 여자가 들먹이는 재미값이라는 계산의 영문을 도대체 모르겠을 뿐더러 단지 가엾은 처지의 내 또래 외갓집 오빠가 아침부터 맞는 것만 불쌍했으니까.
그 무렵의 나를 지탱시켜 준 건 무한한 공상에 빠지기였다. 나는 절대로 저런 무자비한 아버지의 딸이, 냉혹하고 쌀쌀 맞은 엄마의 딸이 아니다. 아주 고귀한 집에서 피치 못할 사연으로 잠시 맡긴 처지, 하니 저토록 무책임하고 안하무인이며 냉정하기 그지없는 저런 사람들은 결단코 내 부모가 아니다. 그러니 꾹 참고 견뎌 내리라던 다짐하기 몇 번이었던가. 죠오라던가, 파데뜨라던가, 주근깨쟁이 앤처럼 옆집에서 나를 낱낱이 지켜 본 잘 생긴 청년이, 부호의 아드님이, 키다리 아저씨가, 맞다. 누군가 나를 이 답답한 곳에서, 내 뜻이 아닌 이 수렁 같은 곳에서 꺼내 줄 사람은 없을까 눈 빠지게 기다리던. 몇 권 안 되는 동화책을 읽고 또 읽어 외울 정도, 아니 동화 속 세상을 내 세상인양 혼돈하며 지내기도 하는 지독히 느린 속도로 익어가는 열매 같은 나날들이 때론 무심히 때론 혹독하게 나를 스치며 흘러갔다.
다정여관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에 이른 중위가 처갓집에 인사 오듯 들르기도 했다. 그보다 더 고조된 분위기, 맞아, 홍익회 간부아저씨들의 단합대회가 있는 날은 다정여관 전체가 잔치집처럼 들썩거렸다. 술이 취한 까치집 마담언니가 홍익회 과장님을 붙들고 대성통곡을 벌이고 토하는 등의 추태를 부려 다소 시끄럽던 날도 있었지만 모처럼 맞은 단체 손님에 엄마와 아버지까지 환하게 얼굴 펴지던, 그래서 즐겁고 즐겁던 그런 날이 날마다 계속되었으면 싶던. 내 또래 조오바와 눈발 날리는 한데에서 기름기 미끈미끈한 교자상을 훔치며 나도 덩달아 즐거워지던. 분명 나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나와는 철저히 무관했던 시간과 풍경들.
모든 불성실한 사람들의 삶이 그러하듯 아버지의 다정여관도, 아버지의 삶도 나날이 음울하고 한 쪽 한 쪽 떨어져나가던 흰 타일의 그 건물처럼 허물어졌다. 그러니까 네 나이 스물 하고도 한 살 때엔 결코 다른 사람에게 네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충고의 시를 외울 무렵 등장한, 시화전에서 만나 겨우 도서관에서 읽은 책의 감상이나 주고받던 큰 키의 머스마, 그야말로 잠깐 스친 사이에 불과한 그 은행장집 외동아들과는, 여관집 딸이라는 게 문제가 되어 헤어졌고. 두 번째 일방적으로 나를 짝사랑하던 대학생은 집안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뺨을 맞고 돌아섰고. 사랑이라고 들먹일 것도 없는 풋내 나는 인연들은 다시 곰곰 떠올려도 그다지 커다란 사건도 없었다. 하니 애면글면 내가 매달릴 이유도 그들이 나를 책임 져야할 책무도 없었다. 하지만 남 몰래 끙끙 앓은 건 나였다. 너무도 부끄러운 부모들로 해서 다친 자존심의 후유증이었다.
이러저러 했건 저러 이러 했건 그들은 나와 무관한 사람들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견딜 수 없이 쓸쓸해지기 시작했다. 내게 다가 온 삶 어느 것에도 놀라지 않던 내가 돌연 막막하고 막막한 세상과 조우한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낯 선 시간들이었다. 두려웠다. 어쩌다 문창호지를 뚫고 들어 온 달빛에 문 열면 마주치던 마룻바닥에 홑이불처럼 깔려 있던 눈을 마주할 때처럼 참으로 적막하고 쓸쓸한 시간. 바로 그 시절이 사랑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꿈꾸는 시절이었던가.
바로 그 무렵 내가 꿈꾸던 사랑의 전형을 발견했다. 물론 책 속에서였지만 나는 그 둘을 달달 외우다시피 입력했다. 정조시대 문사 이옥이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들어 전해 남긴 ‘沈生의 사랑’과 알퐁스 도테의 ‘아를르 여인’. 둘 다 결말이 죽음으로 매듭 되는 사랑이니 좀 서글프긴 하지만. 지금도 떠올리면 그 책을 처음 대하던 날의 감동이 절절할 정도다. 바로 오늘 같은 날 나는 심생의 사랑을 떠올린다. 처음 읽었을 그때도 그랬지만. 잠이 오지 않던 요 며칠 전. 나는 심생의 사랑을 되찾아 읽으며 말 그대로 머릿속이 하얘지도록 펑펑 울었다. 심생이 처녀를 찾아가던 ‘비가 내리면 유삼(油衫)을 뒤집어쓰고 옷이 젖어도 상관하지 않았다’는 이 대목에서 가슴이 얼얼해지더니 처녀가 마침내 심생에게 마음을 허락하던 ‘담쟁이덩굴이 외람되게 높이 자란 솔에 의탁하려다가 ....’라는 대목에서 눈가가 붉어졌다. 그리고 ‘시든 꽃잎은 진창에 뒹구는 것이 정해진 이치’라는 대목에 이르러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펑펑 눈물을 쏟고 만 것이다. 바람둥이 여자의 정체를 알고 난 후부터 날마다 종루가 보이는 언덕에 올랐다가 뒤돌아서기 며칠이던 ‘아를르 여인’의 폴, 그가 어느 날부터 며칠 째 일을 한꺼번에 미친 듯이 한 후 다음 날 창밖으로 몸을 던진 대목을 떠올릴 때와 마찬가지였다. 열일곱의 내가 그동안 무수히 보아 온 군상들의 사랑과는 다른 그 무엇, 하긴 다정여관을 나간 후 커플들의 행적을 내 어찌 짐작할 수 있나.
나는 어째서 그런 상대를 다소곳하게 기다리지 못했을까. 추락할 대로 신분이 추락한 엄마가 벌인 지하 찻집에서 월급 한 푼 없는 레지로, 이제는 사라진 식모언니들을 대신해 언제나 대갓집 마님처럼 우아한 한복을 차려입고 나서는 엄마의 외출을 위해 날마다 인조견 속치마를 빨거나 버선과 고무신을 눈이 부시게 닦아 대령해 놓거나, 이버지의 식사수발과 청소에 쌓인 산더미 같은 빨래를 군소리 없이 해내야 했던, 그 신산했던 처지 때문인가. 엄밀히 따지자면 남편에게 내가 아내가 아니었듯 내 부모에게 나는 딸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들은 이제 훌쩍 건너뛰자.
나는 요즘 들어 시시각각 떠오르는 그 남자를 향한 내 감정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맞아. 심생의 처자가 정확히 한 달 걸려 심생과 마주했듯 한 남자가 일방적으로 보내 온 문자들을 읽은 지 2년 여, 그가 보내오는, 갈수록 심도 깊어지는 말의 무게로 치자면 내 핸드폰은 들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하고 묵직했겠지만 난 한 마디 답장도 하지 않았다. 물론 문자 보내는 법을 미처 배우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굳이 대답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내게 있어 그는 언제나 낯 선 남자였다. 다만 모든 일에 때가 있듯 하필 내가 그동안 허둥대던 삶의 노를 놓고 잠시 의기소침해져 있을 때였던 것. 그러니까 무언가 매달릴 일이라도 있으면 이 가멸 없는 침울함에 빠진 나를 건질까 싶어 두리번대던 날들. 그날도 종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어지간히 지쳐 점심도 굶은 채 버스 승강장에 기대 앉아 있었다. 거리를 스치듯 지나가는 차들을 망연히 보고 있을 때, 그날 들어 보낸 남자의 두 번째 문자가 도착했다.
“팅!”
과녁을 향해 시위를 당기는 활의 퉁김음 닮은 소리에 철렁 놀랐다. ‘점심 많이 좀 챙겨 드셨나요? 제발 살 좀 찌세요’ 이 문자에 훅 시장기가 들면서 갑자기 목이 말랐던가. 어쨌든 바로 그날 버스 승강장에서 내 입 가에 말라붙은 상처보푸라기였던가, 머리카락이었던가를 떼어주던 남자는 이내 뚝뚝 붉은 피 떨어지는 내 살까지 떼어 달라 요구하는 남자가 되었지만. 그건 그렇고. 그는 아내가 없고 나는 남편이 없지만 그저 남보다 더 친해진 정도, 그런 어느 날 내게 불쑥 돈을 빌려 달라 요구했다. 오래 전 내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남자로부터 단 한 번도 그런 식의 얘기를 들어본 적 없던 나. 해서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놀란 눈으로 멀거니 그를 쳐다보았다. 음주운전이 걸림돌이 되어 그저 사망위로금 정도, 그나마 나오기가 무섭게 남동생이 통째로 빌려가 갚지 않은 몇 푼 안 되는 남편의 사망보상금, 그것은 어느새 두 해 넘게 질질 끌고 있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게 당시의 구체적인 내 형편이었다.
어쨌든 나는 솔직하게 얘길했다. 지금 현재로선 내겐 단 돈 몇 백도 수중에 없노라고. 그러나 결국 나는 무리에 무리를 해서 보름이면 정확히 이자까지 갚겠노라 호언장담하던 그 돈을 주고 말았지만.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철저히 치열하지는 못하고, 제 처한 비극적 상황을 비껴가려는 시도는커녕 액면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잠깐 맡은 연극의 배역 정도로 넘기는 내 낙천성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돈을 빌려 간 남자는 약속한 날을 아는지 모르는지. 갚지도 갚지 않은 데에 대한 일말의 변명마저도 없었다. 그런데 사람은 어느 날 문득 점점 더 예기치 못했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더니. 언제부터인가 나는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를 철저히 믿어 주리라, 아니 믿어 보리라고. 엄마에게 반기를 들던 스물 셋 그 무렵으로 돌아간 듯 나는 꽤 진지하게 결심했다. 삶의 무게에 어깨가 짓눌려 있는 고단한 사람과의 동행이 내 몫이라면 비록 쥐를 잡아 끼니를 해결하고 바퀴벌레를 볶아 먹는 신산한 삶일 지라도 뛰어들어 보자고. 이건 내가 아무리 몸부림 쳐도 떼어 내지지 않는 운명이란 벌레려니 내 걸음으론 도저히 그 벌레를 피해 달아날 길이 없었다는 것, 이는 무자비한 부모와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서 이미 터득한 강한 느낌이었다. 한편으론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경험을 가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즉, 내 특유의 대담성이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결혼하자마자 병고에 시달리던 아내가 죽고, 설상가상 팔목을 다쳐 불구에 이르고 그래서 제정신을 잃어 사업은 크게 부도가 났다던가. 그의 이런 이력이 진실이라면 한 번도 제대로 된 삶을 누려보지 못한 자들의 연대의식까지 추가하리라.
남동생이 일부 돌려 준 돈과 말 그대로 물 덤벙 술 덤벙인지 모를 정도로 그야말로 마른 일 궂은 일 가리지 않고 허덕여 도합 몇 천하고도 얼마의 돈을 겨우겨우 해결했다. 대신해 내 이마의 정 중간에 깊게 패인 주름을 얻었다. 그러니 그 시절의 나는 명주의 말대로 충분히 불안해 보였을 것이다. 맞아, 그럴 수도 있었겠지. 심생의 사랑이나 아를르 여인의 폴은 내게 보인 환영(幻影)이었을까. 실내와 바깥의 기온 차처럼, 가을 아침과 저녁의 온도 차처럼 내 꿈꾸던 생과 내 현실의 생, 그 불협화음은 여전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훨훨 날아갈 날개라도 얻은 듯 홀가분하다. 언제나 장담했듯 그도 저 창창한 기세로 피어오르는 능소화처럼 승승장구 중일까, 그 남자.
끊임없이 이어지되 결코 두서가 없는 시와 산문들이 뒤엉킨 실타래처럼 도저히 한 맥락으로 연결되지 않는 노트 속 문구들을 적고 읽으며 견디던 날들. 몇 번이고 제대로 살아야지 아니 제대로 살아내야지, 쉼 없이 되뇌였다. 그러지 않고는 내 한 몸 지탱할 수 없을 만큼의 큰 공허감이었다. 그것은 아직도 내게 종종 휘몰아친다. 그러나 내 삶에 박혀 불행감을 만들던 모든 갖은 옹이들이 어지간히 빠져나갔다. 그래선 가. 누구라도 얼어 시린 발 집어넣으면 너끈히 녹여주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적당한 온기의 아랫목 느낌의 내가 좋다. 화장기 없는 거울 속 내 얼굴에선 가을꽃에게서 느끼는 장한 기운이 풍긴다. 그 어떤 류건 그리움이 적당히 갈앉은 편안한 상태, 젊음의 열정에서 놓여난 지금. 서툴지만 글을 쓰다가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가 행복하다. 도착지 역의 따뜻한 플랫폼에 들어선 느낌이랄까. 충분하진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옷을 너끈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이 주는 어깨 죽지 관통하는 에너지는 그 무엇으로도 비견할 수 없는 충만감을 안겨준다.
계절마다 꽃은 우리가 꿈꾸는 사랑처럼 도처에 피어나고 피어났다가 지고 또 지리라. 볕 의 기세가 갈수록 드세어지는 이 여름 입구에 그는 아직도 어느 그늘 아래에서 서성거릴까. 내 마음은 수시로 묻지만 그와는 일체 연락을 끊은 지 오래다. 금전적으로 아직도 고생하는 나, 돈 냄새에 관한 한 사냥개 보다 탁월한 후각을 지닌 게 사람이었다. 허덕여 보이는 내가 가엾었을까. 한 달에 100만원 운운하는 시골남자의 짝으로 천거되다니, 오랜 만에 맛보는 불쾌함이 외려 유쾌하다. 그는 지금 어떤 모습이 되어 살아가고 있을까. 꽃을 보며 버릇처럼 묻곤 한다.
비닐멀칭 위의 참깨 솎음들은 이미 말라 비틀어졌으리라. 어쩌면 더없이 가벼워진 참깨모종들은 바람에 풀풀 흔적 없이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오늘 해거름 작업은 놓쳤다. 한 포기만 남겨두어야 더욱 무성하게 줄기 퍼져서 나풀거리는 참깨밭의 남은 이랑들을 말끔히 솎아내려면 서둘러 잠자리에 들어야지. 그리고 새 동이 트기를 기다려야겠다.
















제7회 목포문학상 소설 부문 예심평

소설 쓰기는 혼자만의 고독한 작업이다. 괴롭고 힘든 일을, 먹고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만의 공간에서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날밤을 새며 감내했을 창작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한 줄 한 줄 꼼꼼히 챙겨 읽었다.
청년 실업의 문제, 비정규직 노동자, 대리기사, 호스피스 병동에 떠도는 죽음의 그림자, 빈곤의 나락에 떨어져 파멸해가는 가정 등등. 응모작 들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 사람 한 사람들의 귀한 소설 속에는 우리 사는 현실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소설은 당대의 현실을 핍진하게 그려내는 지난한 작업이다. 모두들 시대와 인간의 문제를 읽어나가며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본상 예심에서 <칸디루>, <달빛 사냥>, <떠돌이 개>, <떼>, <미노타우로스 사냥꾼>이 선자 들의 시선을 잡아두었다. 현대 사회와 인간을 읽는 시선의 깊이와 통찰이 그중 돋보이는 소설 들이다.
올해, 남도지역 작가를 발굴하자는 의미로 남도작가상이 신설되었다. 본상 예심과 마찬가지로 남도작가상도 5편의 예심작을 선정했다. 남도작가상 예심에는 <밥차가 떴다>, <의자>, <여름 이야기>, <줄바우>, <봄날은 간다> 5편을 올렸다. 본상 예심작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사회의 인간관계와 모순을 그리기도 했지만 주로 목포의 전설과 역사, 또한 5.18 항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았다. 역사와 시대를 읽고자하는 문제의식은 좋았으나 자료적 설명이 지나치게 많아 소설적 형상화에 무리가 많은 작품들은 아까웠다.
본상과 남도작가상 응모작 150여 편은 어렵게 탄생한 작업들이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이 명제 하나를 붙들고 소설을 쓰는 일은 고통스럽고 지난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모두 좋은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작품, 특히 소설은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소설, 응모작들을 선정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아까운 작품들이 여럿이었다. 그러나 심사는 우열을 가려내는 일이다. 대장장이의 담금질이거나 연금술사의 연금술 같은 치열한 자기만의 정진이 필요하다. 모든 작품마다 그런 과정을 겪어야 한다. 소설이라는 어려운 길을 함께 가는 동행 들이 많다는 것에 위로를 받으며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정진을 계속하시길 바란다.

예심위원 : 정강철(소설가) 김현주(소설가)





제7회 목포문학상 소설 부문 본심평

예심을 통과해서 본심에 올라 온 작품이 <칸디루>, <달빛 사냥>, <떠돌이 개>,<떼>,<미노타오로스 사냥꾼>이렇게 다섯 편이었다.
이미 예선을 통과해서 올라 온 작품이어서 상당한 창작 연륜을 느끼게 하는 일정 수준의 작품들이었다.
<달빛 사냥>의 음울한 삶의 편린이나 인도 바라나시의 화장터를 배경으로 쓰인 <떠돌이 개>, 가축의 살 처분 현장이 무대가 된 <미노타우로스 사냥꾼>들은 오늘의 현실이 어둡고 무거워서인지 음울한 삶의 단면들에 천착하고 있었다.
<칸디루>와 <떼> 두 편이 구조상 단편이 가진 집중력과 통일성에서 앞의 세 작품보다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칸디루>가 너무 많은 사건을 병렬하여 통일성에 흠을 주고 있는데 반해 <떼>가 보인 통일된 집중성이 단편의 특성을 더 잘 드러내고 있어서 <떼>를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남도문학상 본상에 올라온 남도문학상 예심 통과작은 <밥차가 떴다>,<의자>,<여름 이야기>,<줄바우>,<봄날은 간다>이렇게 다섯 작품이었다. 우선 <의자>와 <줄바우>두 편이 제외되었다.
<의자>는 의자 자체를 상징적으로 활용하려 한 것으로 보였으나 전체의 사건 전개가 당위성을 얻는데 부족해 보였고,<줄바우>는 피폐해가는 농촌의 현실을 마을을 상징하던 바위가 관찰하는 기법으로 서술하였으나 집중력을 얻는데 실패하였다.
<봄날은 간다>는 꽤 긴 서사적 시간을 그대로 늘어놓아 단편으로의 긴장감을 얻는데 실패하였다.
여기에 <밥차가 떴다>가 보여준 어두운 풍경 속의 밝은 빛은 호감을 갖게 했으나 단편으로의 집중력을 얻지 못하였다.
<여름 이야기>는 신산한 삶을 살아온 한 여인의 지난 삶을 조망해 본 작품으로 단편의 소재로는 너무 많은 서사가 들어있는 약점이 보였으나 긴 시간을 서술적으로 압축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하여 남도문학상 당선작으로 선하기로 한다.

본심위원 : 유금호 (소설가)

출처 : 동목 작가회
글쓴이 : 선혜영(수필14)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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