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서소희/가마

테오리아2 2022. 9. 2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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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유리벽 안에 박제되어 있는 물건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 분명 의자같이 생겼는데 의자는 아니다. 그리고 사람이 앉기에는 작다. 모양을 보면 작은 가마다. 팔걸이와 등받이에는 당초문양을 그려 곱게 단청을 했다. 안내문구에는 영여(靈輿)’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다. 이승의 혼백(魂帛)을 저승으로 옮기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라고 한다.

 

영혼이 타는 가마다. 영혼이 사용한다는 것은 저승과 이승을 연결해 준다는 뜻이다. 순간적으로 좁쌀 같은 소름이 돋는다. 죽음의 냄새를 맡았던 것일까. 저승과 연결된 무엇이 저 위에 웅크리고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 가마에 앉으면 이 세상의 모든 집착을 훌훌 털어버리고 가뿐히 저 세상으로 떠나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허나 저 세상은 죽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죽음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죽음이 무엇인지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죽음을 돌아가다라고 한다. 그러니 죽음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것이라 믿고 싶다.

 

이를테면 물이 뜨거운 열을 만나 수증기가 되어 허공에 흩어져 보이지 않게 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아닐까 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허공에 흩어져 있다 때가 되면 다시 물이 되는 것이다. 그것처럼 죽음이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멸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는 과정일 것이다.

 

무연히 눈동자가 다시 하얀 벽면으로 간다. 망사 같은 날개가, 빨간 꼬리가 눈길을 잡는다. 고추잠자리다. 영혼은 떠나고 빈 허물뿐이다. 잠자리의 머리가 향한 곳은 가마다. 아마 저 자리에 앉고 싶었던 모양이다. 녀석은 눈앞의 가마를 타고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했을까.

 

지악스럽게 무더웠던 여름날, 아버지의 영혼은 지상을 떠났다. 돌이켜보면 그해 여름은 왜 그리 무더웠을까.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일 년도 되지 않아 당신은 쓰러졌다. ‘담도암이었다. 자식들은 이라는 단어를 숨겼다. 병실에서 한숨처럼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해도 소원을 들어 줄 수 없었다. 집보다 병원이 당신의 고통을 줄여줄 것이라는 자식들의 핑계 아닌 핑계 때문이었다.

 

워낙 말랐던 당신은 눈에 띄게 더 말라갔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는 뼈를 덮은 거죽 같은 허물뿐이었다. 앙상한 육신이 서서히 그림자가 되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피붙이들은 울음을 토했다. 짧은 삶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 년 더 살았으면 좋았을 연세였다.

 

영정사진이 하얀 국화꽃으로 장식된 단상에 놓였다. 사진 속 모습은 지금의 나보다 젊었다. 아마 사십을 갓 넘겼을 것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마치 삶을 잘 살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정말 당신의 삶은 그러했을까.

 

당신은 술을 무척 좋아했다. 술 때문에 집밖에서 망신스런 모습을 줄줄이 흘리고 다녔다. 그리고 술만 마시면 어김없이 신경을 긁는 주정이 흘러나왔다. 마치 고장 난 라디오처럼 멈추지 않고 끝임 없이 잡음을 내 보냈다. 잡음은 가족을, 나를 고문했다. 말이란 것은 마음보다 급하게 움직였다. 거르지 않은 거친 말들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서로의 심장을 할퀴었다.

 

우리는 매번 같은 장면을 아프고도 지루하게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당신이 아버지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세상에서 당신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뒤돌아보면 당신의 삶에 술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술에 점령당한 시간이 여름날의 매미처럼 집요하고 강렬했을 뿐이다. 술에 젖어있지 않았을 때는 따뜻했고 눈물이 많았다. 생각 없이 말을 내뱉지도 않았다. 또한 평생 자식을 위해 헌신했다.

 

농사 밖에 몰랐던 당신은 물려받은 땅을 잃어버리고 중년의 나이에 도시로 나왔다. 올망졸망한 육남매를 이끌고 도시에 던져진 느낌은 얼마나 막막했을까. 어렵게 일자리를 구했고 열심히 일했다. 가족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물며 힘들지 않느냐고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한 달 중 며칠은 진탕 술을 마셨을 것이다. 술이 당신의 힘든 시간을 위로해주는 유일한 친구였는지 모른다.

 

당신이 떠나고 존재했던 사람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는 느낌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친정에 가면 여전히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그 모든 것들은 잔상 같은 착각이었다. 여름이 가고 다시 여름이 찾아와도 당신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영정사진 속에서 여전히 같은 얼굴로 웃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문득 당신이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었다. 때로는 버스 안에서, 때로는 거리에서였다. ‘, 아버지다.’ 한 치의 의심 없이 탄성이 마음속에서 튀어나왔다. 깜짝 놀라 다시 바라보면 헛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말 헛것이었을까.

 

헛것을 보고나면 심연 깊숙한 곳에 억지로 눌러 놓았던 무엇이 툭 튀어 올랐다. 처음엔 퇴색된 사진처럼 희미하던 영상은 순식간에 마법처럼 뚜렷해졌다. 그것은 당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감은 눈 가장자리에 끈끈한 눈물이 오래된 눈곱처럼 엉겨 있었다. 그 다음 심장이 짜안 하게 저려왔다.

 

어딘가 조그마한 입술이 하나 있어 수군거리고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내 뱉었던 많은 말들이 무당벌레처럼 죽은 듯 엎드려 있다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 그때 그랬지, 너 그때 그랬지하며 잊어버렸던 장면을, 잊고 싶은 장면을 조근조근 속삭였다. 함께 했던 행복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직 내가 당신을 아프고 힘들게 했던 것만 살아남아 각다귀처럼 달라붙었다.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인생에 있어서 서로 싸우며 찌지고 볶던 그 순간들이 가장 빛나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그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존재했고 육남매가 같은 집에 살았다. 마음껏 사랑하며 미워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이 영원할 줄 알고 고운 말보다 미운 말을 마구 던지며 살았다.

 

더 이상 당신과 나는 같은 공기를 마시지 않는다. 예전처럼 치열하게 싸울 수도, 웃을 수도 없다. 당신의 하품소리를 듣는 것 따위의 사소하면서도 사소하지 않은 것조차 하지 못한다. 모두 죽음을 통한 소멸 때문이다. 소멸은 치유되지 않는 고통과 지워지지 않는 슬픔을 새겨놓는다. 아마 당신이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시간만큼, 당신을 부끄러워한 깊이만큼 나는 아파해야 할 것이다.

 

영여 앞으로 다가선다. 퇴색되지 않는 죄의식을 그곳에 올려놓는다. 사랑했다고, 고마웠다고, 죄송하다고 놓쳐버린 단어를 가마 위에 싣는다. 그리고는 가거라, 가거라주문을 왼다. 간절한 마음이 저승에 있는 당신께 전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심장에 얹힌 돌덩이를 희미하게 만들기 위해서 영여의 역할을 믿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어쩌면 영여는 죽은 사람을 위한 도구가 아닐지 모른다. 마음의 무게를 줄이려는 산 사람을 위한 것이다.

 

아직도 심장 속에는 당신이 살아있다. 형체가 없는 당신과 형체가 있는 나는 같은 공간에 머물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공존한다. 어느 날은 묘지에서, 거리에서, 버스 안에서 또 어느 날은 제사상을 가운데 두고 당신과 나는 만난다.

 

죽음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쉽게 잊히지도 않는다. 아마도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롭지 못할지 모른다. 문득문득 가슴이 아리고 명치가 찌릿할 것이다. 다만 언젠가 먼 훗날, 기약할 수는 없지만 그리움이, 미안함이 그리고 죄책감이 풍화될 것이라 믿으며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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