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꽃보다 9

테오리아2 2016. 2. 3.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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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9

 

김근혜

 

 

 

 교회 앞마당에 들어섰다. 헌혈차와 몇 개의 부스 앞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이라 예사로 넘기고 본당으로 향하고 있는데 원장님하는 목소리가 귀에 익다. 학모로 만나 지금까지 정을 나누고 있는 지인이다. “장기기증하실 거죠? 저도 했어요. 남편한테 권했는데 내가 서약서 쓰는 동안 도망가고 없네요. 큭큭.”

 

 뜬금없는 지인의 말에 깜짝 놀랐다. 뭔가 옹색한 변()이라도 늘어놓는 게 순서일 텐데 이럴 때 내 입심은 발휘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부스로 향하고 있는 내 발걸음이 신기했다.

 

 서약서를 받아들었다. 글씨가 작아 잘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하는 것이니 읽어볼 필요도 없었다. 모두 표시했다. 얼떨결에 하긴 했는데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예배가 집중이 안 되었다. 마침 주보에도 서약서가 있어서 찬찬히 읽어보았다. 아뿔싸, 생존 시에 신장 기증하는 것에도 표시했던 것이다.

 

 장기기증은 신장 2, 폐장 2, 심장, 간장, 췌장, 각막 2개가 각각의 사람한테 돌아갈 경우, 아홉 명을 살릴 수 있다. 나 한 사람이 꺼져 가는 생명, 아홉 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몇 년 전부터 망설이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잘한 결정 같다. 살면서 기뻐할 이유가 생겨서 다행이다. 이런 일은 신중하게 생각할 것 없이 빨리하는 것이 낫다. 나처럼 망설이다가 어떤 계기가 되지 못한다면 영영 그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내 심장을 가져가는 사람은 남자였으면 좋겠다. 여자가 나처럼 산다면 많은 제약 앞에 견디기 힘들지도 모른다. 여린 감성과 역마살로 시달리기도 해야 할 것 같아서다. 꽃이 지는 것만 봐도 무상해서 슬퍼하고 해넘이만 봐도 쓸쓸해서 어디론가 무작정 내달릴 것이다. 감성을 다룰 수 없어서 항우울제를 복용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심장을 가져가는 사람은 예술가였으면 좋겠다. 글을 쓰는 작가여도 좋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여도 좋겠다. 내가 가진 끼를 소화하려면 보통 사람은 견디기 힘들 것이므로.(임으로.)

 

 사람들은 죽은 후에도 몸에 손을 대는 것을 내켜 하지 않는다. 신체 훼손을 꺼리는 동양의 유교적 문화도 장기기증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잘못된 정보로 인한 오해와 편견도 아름다운 나눔을 꺼리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에는 장기기증과 각막기증을 증명하는 표시로 조그마한 동그라미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이것을 볼 때마다 뿌듯해진다. 큰 공을 세우고 달고 다니는 훈장 같다. 이것을 내보이면 사람들은 놀란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놀라는 사람들이 나는 더 놀랍다.

 

 서약서를 쓴 후로는 달라졌다. 어디서 솟아오르는지 모를 기쁨에 하루가 즐겁다. 내 몸과 교감을 나눈다. 내 몸에 있는 장기들과 가끔 대화도 한다. 사랑한다는 말도 들려주고 쓰다듬기도 한다. 조금만 아파도 그 부위에 손을 얹고 기도한다. 내 몸이 소중하고 자랑스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장기 하나하나가 나 아닌 아홉 사람의 몫 같아서 더 조심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건강한 장기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살았을 때 그리 많이 베풀진 않았지만 죽은 후에라도 내 몸이 누군가를 위해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려야 하는데 어떻게 말할까 고민했다. 얼굴을 보고는 차마 말하지 못해 몇 주를 망설인 터였다. 가족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막연했고 아무리 내 몸이지만 마디 의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뇌사 상태나 죽음에 가까워지면 여섯 시간 이내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남편과 딸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장기기증 서약서와 함께. 딸아이는 의외의 반응이다. 자신도 해야 하느냐며 웃었다. 딸아이는 엄마의 생각을 잘 알던 터라 대수롭잖게 여기는 것 같았다.

 

 몇 시간 뒤에 남편은 사람 놀라게 그런 문자를 보내느냐고 호들갑이었다. 그 반응이 싫지 않았다. 지난주 집에 내려왔을 때, 형편이 좀 팍팍하다고 했더니 나쁜 마음이라도 가져서 이런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난 아무 일도 없고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사후(死後), 나를 기다리는 그들에게로 가서 아홉 송이 꽃이 될까 한다.

 

 

 

 

김근혜

대구행복의전화 소장

 

 

2014.05.27 01:00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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