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실내악
김언
이 방에서 그는 여러 군데 앉아 있다. 동시에 수십 군데에 앉을 수도 있다. 구름의 배치에 따라 의자의 위치가 바뀌고 조금씩 형태를 달리하며 앉아 있는 포즈가 발견되고 그사이 침묵이 흐른다. 느리게.
그는 밤에 보이는가 싶더니 낮에도 서 있다. 낮에도 천장은 충분히 높고 그는 등을 웅크리고 들어선다. 구름은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방향을 바꿀 것이다. 의자 위에도 윤곽이 남아 있다. 천천히.
침묵을 견디지 못해 귀를 틀어막는 한두 사람의 손이 있다. 그 손가락이 오늘 밤의 연주곡목이다. 그는 밤에 보이는가 싶더니 낮에도 가만히 서 있는 소리를 낸다. 예정된 시간에 그는 일어섰다. 앉아 있던 그가 의자 위에도 남아 있다. 죽은 듯이 침묵을 흘리는 이 방에서 그는 여러 군데 앉아 있다. 브라보!
그의 음악이 그의 기침 속에 섞여들었다. 그의 기침이 그의 음악 속을 파고든다. 조금씩 형태를 달리하며 그는 앉아 있다. 그렇게 일어설 때가 있다. 그는 아직 만들어지고 있다.
『현대시학』 2005년 8월호
게으르기는! 좀 근작 중에서 고르지 않고.....
그러나 최근의 나는 시 읽기에 애써, 그다지, 좀체로 골몰하지 않는 편이다. 읽는 만큼 무언가를 써서 나를 벼릴 수 있다면! 그러나 나는 또 안다. 읽는 만큼 쓰는 이는 없다. 차라리 안 읽고 쓰는 이들이 더 많달까. 또 그러나 이런 말이 글을 읽지 말라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말들은 밑바닥(전후맥락)이 사라지면 끝간데를 모르기 미련이다. 그래서 간혹 여기의 이 코너를 고민한다. 무언가가 호도되지는 않을까. 누군가를 파괴하는 것은 아닐까. 질문도 없고..... 딱히 더 들려줄 말도 없으면서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에 주름이 생기는 일, 이 세상에서 이것을 칭하는 말로 '늙다'라 하는 것 같다. 이 숱한 접속사들로도 나를 다 엮지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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