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집
이윤학
제비가 떠난 다음 날 시누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제비집을 헐었다. 흙가루와 함께 알 수 없는
제비가 품다 간 만큼의 먼지와 비듬,
보드랍게 가슴털이 떨어진다. 제비는 어쩌면
떠나기 전에 집을 확인할지 모른다.
마음이 약한 제비는 상처를 생각하겠지.
전기줄에 떼 지어 앉아 다수결을 정한 다음 날
버리는 것이 빼앗기는 것보다 어려운 줄 아는
제비떼가, 하늘높이 까맣게 날아간다.
<전문>. 1990 <한국일보>신춘문예
대부분의 시에는 현상이 있고 이에 따른 관찰이 있다. 이쯤에서 그쳐도 된다면 시가 별 것이겠는가.
시인들은 흔히 앞의 '현상'과 '관찰' 다음에 '발견'을 펼쳐보이게 마련이다. 이런 발견이 없다면 대부분의 시는 그저 그런 시가 될 것이고 지은이 역시 그저 그런 시인이 될 것이다. 발견이야말로 한 시인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니까, 자기만의 시선(발견)이 없는 시란 그저 행과 연가름이 있는 조작된 문장쯤인 셈이다. 위 시에서 시인이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묻고 찾아볼 수 있다면, 이 시에서만이 아니고 모든 시에서 그리할 수 있다면 눈이 좀 열릴런지도 모르겠다. 그리만 된다면 이런 몇 줄이 그냥 시간때우기가 아닌 참 공부로도 자리할 수 있을텐데...... 그러나 거기서부터는 나의 몫이 아니다. 숟가락질은 배고픈 자들의 것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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