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내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그 저수지가 나오네
내 눈 속엔 오리떼가 헤매고 있네
내 머릿속엔 손바닥만 한 고기들이
바닥에서 무겁게 헤엄치고 있네
물결들만 없었다면, 나는 그것이
한없이 깊은 거울인 줄 알았을 거네
세상에, 속까지 다 보여주는 거울이 있다고
믿었을 거네
거꾸로 박혀 있는 어두운 산들이
돌을 받아먹고 괴로워하는 저녁의 저수지
바닥까지 간 돌은 상처와 같아
곧 진흙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섞이게 되네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문학과 지성사
젊은 날에 몇 번 그가 운영하던 구의동 카페에 들렸던 적이 있다. 그는 매번 조용히 구석자리에 않아서 낡는 타자기의 자음 모음을 번갈아 불러내거나, 더러는 술에 반쯤은 혀가 풀린 목소리로, 그럴 때의 그는 조금 수다스러웠더랬다. 그후로 세월이 흐른 뒤 또 두어 번, 어느 행사의 뒤안쯤에서 마주쳤을 것이다. 그는 나를 모르고 나만 그의 얼굴을 알아서, 나는 내가 아는 그간의 그를 오버랩시키면서 멀찍이 있었다. 그때의 그는 또 술에 촉촉해진 뒤였으므로.
들리는 말로 지금은 안양 어디쯤에서 습작생에게 시를 가르친다고 한다. 대학생 때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발을 들인 그는 내내 잘나가는 시인이었다. 그의 낮은 목소리는 시에서조차도 낮고 그윽해서 언어의 생리를 다 알아버린 노인네 같아서 <저수지>를 노래할 때의 그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세상을 보는 건 나이가 아님을 끄덕이게 된다.
어디에 힘을 준 구석도 없는데 이 시는 파문을 갖는다. 그러나 습작기의 문청들에게 이런 시는 정말 어렵다. 마음 먹으면 금세 써내려갈 것 같으니까, 그러나 막상 쓰다보면 저 텅 비운 팔뚝이 어떻게 일렁이는 힘을 갖는지 알아챌 방도가 없어지는 것이다. 뭘 더 덧붙이랴. 어렵지 않으니 설명도 불필요하다. 그렇더라도 깐보면 안 된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런 시는 다 버린 다음이라야 손바닥에 겨우 얹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