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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지/김근혜

짝지 가진 것이 없어도, 맨발로 땅을 디디고 살아도,짝지와 함께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거울이 없어서 내 모습 알 길 없어도거울이 되어 주는 짝지가 있어서 나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둘 사이를 지탱하게 하는 힘은 돈이 아니고, 집이 아니고, 신발도 아닌 서로가 아껴 주는 따뜻한 마음이랍니다 힘들거나 아플 때는 달려와 주고, 언제든지 속마음을 터놓고얘기할 수 있는 짝지가 있다는 것이 내 삶의 자랑입니다 우리는 아직 소유가 무엇인지 모릅니다알몸을 가릴 수 있는 낡은 옷 한 벌이라도 감사히 여기고,몸이 건강한 것을 축복으로 여깁니다 그러니 가진 게 없어도 부럽지 않고, 욕심 부릴 이유가 없습니다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습니다마음 그릇에 담긴 예쁜 짝지 얼굴과 둥근 마음, 그거 하나면 족합니다

그룹명/시 방 2025.05.30

인연/김근혜

인연 번듯한 외모보다는 청국장 냄새가 나더라도 진실한 사람이 좋다막걸리처럼 텁텁해도 온기를 가진 사람이면 오래도록 만나고 싶다작은 허물도 크게 덮어주고, 마음을 터놓아도흉이 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엄마 품처럼 푸근해진다어쩌다 내 인생에 행운같이 찾아온 사람은 오래 머물지 못하고멀리 이사를 하거나 마음이 떠나 버려서 슬프다그래서 행운은 지나가는 구름이라고 했나 보다

그룹명/시 방 2025.05.30

괜찮아/김근혜

괜찮아 괜찮지 않은데 ‘괜찮아’라고 습관이 돼 버린 말속뜻은 ‘괜찮지 않아’서인데 왜 눈치를 봐야 하는지 힘들 때 ‘괜찮아?’라고 말해 주는 사람보다크게 잘못한 것처럼 꾸짖는 사람들이 많아서 숨어 버린 말그래서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아”라고 해야 했던 말그럴 땐 당당하게 “괜찮아”가 아니고 “힘들어”라고 해야 하는 말 속마음은 괜찮지 않은데 왜 괜찮다고 해야 하는지 이젠 알 것 같다이 말은 상대방을 배려해서 나온 말이라는 걸 “괜찮아?”라고 물을 땐, “응, 괜찮아” 또는 “힘들어”라고 말할 용기를 내 볼까?

그룹명/시 방 2025.05.30

아버지의 서사/김근혜

아버지의 서사 낡은 책 한 장 한 장 넘기면시 쓰느라 덜컥덜컥, 잠들지 못하던 아버지의 밤 다른 자식보다 아버지 가슴을더 많이 분양받은 나 비단으로 손수 수의를 만들고책 목 언저리를 쓰다듬던 아버진 늘하얀 달을 눈에 넣고 계셨지 낡은 책이 파쇄기에 잘려 나갈 때마다아버지 임종을 보는 것 같았다 아버지 마음 크기만 한 시집 한 채 지어 놓고마지막 행간에 붉은 등 하나달아 놓았다

그룹명/시 방 2025.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