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풍진이/최정임

테오리아2 2022. 9. 2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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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짖습니다. 낯선 이가 지나가나 봅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채마밭에 한 여자가 허리를 숙이고 서 있습니다. 뒷 절은 산 모양대로 앉은 암자여서 계단식 구조입니다. 학교 울타리를 지나면 예쁜 열무밭, 배추밭. 그리고 어른 키만한 옹벽 위에 풍진이가 지키는 작은 절 마당이 있습니다. 오늘도 그 마당 한켠에서 진회색 몸뻬 입은 아줌마가 푸성귀를 다듬고 있지만 풍진이는 예사로운 집안일이라는 듯 그쪽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채마밭의 나그네를 향해 귀를 세우고 서 있습니다.

개 집 옆 감나무 두 그루가 화려한 가을단장을 마무리한 후 지난 주 내내 알록달록한 잎사귀를 멋쟁이 옷깃 세우듯 치켜든 채 실눈 뜨고 풍진이를 내려다보더니 주말 지내고 출근하니 헐렁헐렁 힘이 빠져 있습니다. 간밤에 다녀간 초겨울 비에 야단맞아 풀이 죽었는지 그동안 위장복으로 꼭꼭 숨겨둔 감 홍시를 기어이 풍진이에게 들키고 맙니다. 기다리는 것밖에 모르는 풍진이는 두툼한 감 단풍 방석을 깔고 앉아 보기만 하여도 기분이 좋아지는 주홍 감을 올려다보며 느긋이 하품을 해대는 통에 입맛을 다시는 눈가가 촉촉해 보입니다.

풍진이는 바보입니다. 절밖에 모르는 바보입니다. 내 등 뒤의 햇빛 아래에서 먼지 폴폴 날리는 운동장이 그새 파란 잔디로 바뀐 것도 모르고 교무실 유리창에 무당벌레 한반이 단체로 소풍 온 것도 모릅니다. 2학년 아이들이 신종플루 주사 맞느라 걷어 올린 팔뚝을 연신 만지며 겁먹은 표정으로 줄 서 있는 것도 모르고 3학년 두 녀석이 벌 청소하는 것도 모릅니다. 간혹 내가 평상에 앉은 노스님 몰래 손을 흔들어 저에게 눈을 맞추어도 윙크는커녕 못 본 척 슬며시 눈길을 돌립니다. 저 녀석이 절에 몇 년 살았기에 예쁜 아줌마를 외면할 수 있을까요.

복도를 지나칠 때 가끔 씩 짖는 소리에 돌아보던 노란 개였습니다. 교무실내 자리를 옮겨 문만 열리면 절 마당과 마주앉게 되었지요.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을 통해 뒷 절의 풍경이 고스란히 액자처럼 들어왔습니다. 어느 날 동네를 꿰고 계시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멍한 내 눈길을 따라가다 ‘풍진이’ 라는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풍진? 이 풍진세상, 절집 개 이름치고 참 서글프다 생각했는데 알아보니 엄마 아빠의 뼈대 있는 본관의 첫글자에서 딴 이름이랍니다.

어느 한가한 날, 볕드는 창틀에 팔을 포갠 채 가만히 얼굴을 묻었습니다. 손등에 내려앉은 볕의 따스함에 마음이 모락거렸습니다. 감은 눈을 떠 보니 조용한 햇살 속에 풍진이가 서 있었습니다. 줄에 매여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이 새삼 마음으로 다가왔습니다. 말이 통하는 친구도 없고 뛰어다닐 자유도 없이 바닥에다 줄이 허용하는 작은 동그라미만을 그리며 살아가는 개. 혼자 사는 내 친구는 찾아오는 이도 없고 전화벨도 울리지 않는 나날이면 어느새 TV와 대화를 나누는 제 모습을 본답니다. 어쩌다 잘못 걸려온 전화라도 울리면 친절하게 응답을 하는 제 목소리를 듣는답니다. ‘너 참 외롭겠구나’ 가족이라곤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 ‘휴우’하며 평상에 앉으신 후 지팡이에 의지한 채 혼잣말을 나누시는 노스님과 항상 바쁜 걸음으로 마당을 가로지르는 보살님뿐.

풍진이는 텃밭 새를 지나가는 빨간 등산객에게 절 한번 쳐다보라고 짖어대고 배추밭에 이따금 소리 없이 날아와 너울거리는 나른한 흰나비에게 좀 더 있다가라고 조를 뿐입니다.

풍진이는 절집 개입니다. 가끔 신도들이 찾아와 머리를 만져주어도 아랫마을 누구처럼 배를 내보이며 재롱을 떨지는 않습니다. 다만 꼬리를 흔들어 예를 갖춥니다. 어쩌다 김씨가 꽃님이를 데려오면 오랜만에 만나는 이성인지라 부끄러워 제대로 얼굴도 못 쳐다봅니다. 혼자 바쁜 듯 주위만 빙빙 도느라 목줄소리만 요란합니다. 고 가스나 개는 풍진이가 비켜준 동백그늘 속이 마치 제집인 양 꼬리를 살랑거리며 풍진이 밥을 축내고는 주인 따라 동네로 내려갑니다. 그제서야 풍진이는 기약 없이 멀어지는 꽃님이의 뒷모습에 대고 안타깝게 짖어댑니다. 개만 보면 언제나 쓰다듬어 주시는 미술선생님이 간식을 사 들고 뒷 절에 다녀온 이후 복도를 지날 때마다 한번 씩 그를 불러봅니다. 손에 든 열쇠고리를 흔들어 눈을 맞춥니다. “풍진아” 얼굴만 하얀 풍진이는 아가씨의 반기는 부름에 복슬한 노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다 때마침 뎅그렁거리는 처마 끝 물고기소리에 슬그머니 몸을 돌립니다.

풍진이가 다시 길게 짖어댑니다. 내다보니 문도 없는 절 입구에 알록달록한 두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비탈길에 웬 자전거냐고 야단치는 듯 소나무 숲이 울리듯 짖어댑니다. 낯선 이는 짖는 소리에 떠밀리듯 비틀비틀 샛길로 내려갑니다. 막상 그들이 멀어지자 짖음을 멈추고 힘없이 꼬리를 흔듭니다. 있어 분답스러움보다 없어 느끼는 외로움이 더 진함을 아는 듯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향해 ‘끄응’하는 여음으로 안타까움을 드러냅니다.

자리에서 고개만 들면 창문사이로 보이는 풍진이는, 나를 잘 모릅니다. 마치 TV 속의 연예인을 나만 알고 좋아하듯이. 뭘 원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맘속까지 알아보려 안달하지도 비위맞추려 애쓰지도 않습니다. 언제 보아도 바쁠 것 없이 느긋하고 조용한 절처럼 우리 사이는 편안하고 담담합니다.

몸과 마음이 바쁠 때는 없는 듯 잊은 듯 지내다가 시간이 멈춘 듯한 절 풍경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차를 마실 때나 수많은 학생들과의 소모적인 관계에서 힘이 들어 지칠 때, 그냥 한번 씩 바라봅니다. 바라볼 때마다 선해지게 만드는 하늘처럼 구름처럼, 그러나 너무 멀리 아닌 만질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가까이에 그가 있어 그냥 좋습니다.

나는 풍진이네 암자 이름도 모릅니다. 절에 가더라도 개를 무서워하는 나는 풍진이 곁에 다가가지도 소리 내어 부르지도 못할 것입니다. 부르면 큰 소리로 짖어 댈까봐, 아니면 좋다고 내게 달려 올까봐 겁이 나, 그냥 가끔 한번 씩 속삭입니다. ‘풍 지 나.’

수업종이 울립니다. 종소리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교무실을 나섭니다. 줄에 매였지만 결코 초라해 뵈지 않는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보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울러 퍼지는 학교종소리 따라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건물 속 사람들을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봅니다. 그냥 저처럼, 자라서 어른만 되면 될 것을 꼭 다른 무언가가 되기 위해 시간이라는 줄에 매여 이리로 저리로 휘둘리는 아이들을 말없이 보고 서 있습니다. 법당에서 목탁소리가 울립니다.

날이 추워지면 풍진이와 나 사이의 창문이 닫히겠지요. 겨울은 우리 모두를 더욱 작게 나누고 가두어 외로움을 진하게 만듭니다. 길가에 이미 떨어진 낙엽처럼 절 마당 양지바른 곳에 하늘높이 자란 황금빛 은행마저 잎을 떨구는 진짜 겨울이 오면, ‘풍진아! 네게서 먼 산을 앗아간 학교건물에서 매일매일 널 바라보던 수많은 시선들로부터 잠시 벗어나 편히 지내거라. 네게 풍경대신 한겨울 북풍을 막아주는 바람막이 병풍이 될 테니 절 마당 소복한 볕과 함께 잘 지내거라. 고맙다. 풍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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