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면 되돌아 와야 한다. 길 떠날 때는 즐겁고 신이 나지만 돌아올 때는 초조하고 스산하다. 명절 때도 귀향길보다도 귀경길이 더 정체가 심하고 사고가 많이 나는 것도 이런 조바심 때문일 듯싶다. 떠난 길을 되돌아오려면 U턴 지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 지점은 길 위일수도 있지만 고향집이나 유원지나 명승지일 수도 있다. 우리 인생행로에도 U턴 지점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사십대까지 앞만 보고 살았다.가구나 가전제품만해도 우리 집에 그게 정말 필요한가보다는 남들도다들 그런 것들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장만할 이유가되었다. 물건만이 아니라 먹는 것까지도 그랬다. 요리책을 참고로 식단을 짜고 아침에는 밥 대신 빵을 먹었다. 삼시 밥을 차린다는게 억울했고 아이들의 입 맛도 그렇게 보수적으로 길들여서는 안될 것 같았다.이런 식으로 잘 나가다가 언제부터인지 빵 쪼각은 목이 메었고, 서양식 스프는 느글느글해지기 시작했다. 하다못해 찬밥덩이라도 된장 국에 한술 말아먹어야 속이 편했다. 같은 우리 음식이라도 현대식으로요리 조리 모양을 내거나, 서양식을 가미해 잔재주를 부린 음식보다는원형에 가까운 진국스러운 우리 음식이 먹고 싶었다. 그렇지만 모든문화가 그렇듯이 음식문화도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것이지 원형이란것이 어디 있으며 있다고해도 어떻게 내가 그걸 먹어봤다고 할 수가있겠는가. 그러나 개개인에게 먹는 즐거움, 음식 만든 이의 정성에 대한 감사를 일깨워준 원초적인 음식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 유년기의음식을 엄마의 손맛이라해도 좋고, 음식의 원형이라해도 좋지않을까. 그렇다면 이 나이에는 도저히 회기할 수 없는 맛이다. 얼마 전에는몸살을 몹시 앓고 났는데 회복기에 가장 먹고 싶은 게 흰죽에 새우젓을 얹어서 먹는 거였다. 보통 새우젓이 아니라 육젓 말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육젓이란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새우젓이면 새우젓이지 육젓이 뭐냐는 것이었다. 6월에 잡은 새우로 담근 젓을 육젓이라해서 으뜸으로 치고, 가을에 잡은 새우로 담근 젓을 추젓이라해서 허드레로 쳤다. 그렇지만 육젓도 비싼 것은 아니어서, 서민층도 초가을에 한독씩 장만해서 김장때 쓰고 남은 것은 일년내내 두고 먹는, 된장 간장이나 마찬가지의 기본조미료였다. 어려선 배탈이 잘 났다. 배탈이 났을 때 엄마는 흰죽을 쑤고 육젓에다 참기름도 치고 깨소금이랑 고추가루도 솔솔 뿌려서 조물락조물락 무쳐서 반찬으로 주면서 장조림을 못해주는 것을 미안해 하셨다. 나도 새우젓보다는 장조림 간장을 해서 흰죽을 먹는 게 소원이었다. 새우젓 반찬이란 엄마가 아무리 솜씨를 다해 조리를 했어도 된장덩어리가 그대로 상에 올라온 것처럼 창피했다. 우리의 가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같아 비참하기조차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새우젓 값이 오히려 금값이라고 한다. 그나마 대부분은 수입한 거고, 시중에서 국산이라고 원산지를 밝혀놓은 것도 추젓이지 육젓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비싸서가 아니라 진짜 육젓이 어떻게 생긴 건지 잘 몰라 못구해오고 잣죽이니 호박죽이니 하는 것으로 내 입맛을 달래려 들었지만 나는 오직 육젓이 먹고 싶어서, 아니 새우젓 꽁다리 하나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게 서러워서 눈물이 다 날 것같았다. 내 입맛의 대표적인 U턴 현상이었다. 그러나 노망소리가 듣기싫어 그럴듯하게 U턴 어쩌구 하는 것이지 옛날에 대한 나의 이런 못말리는 집착을 노망의 초기현상이라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집착이 괴로움을 낳고 마음의 병이 된다는 것은 그 집착하는 바가 비록 새우젓 꽁다리 같은 하찮은 거라 해도 변함없는 진리가 아닐까.
그런 뜻으로는 이런 U턴 현상과 함께 가진 것에 대한 애착이 점점시들해지다가 이제는 짐스러워서 맨날 장만하는 것보다는 없앨 궁리부터 하게 되는 것은 노망이라기 보다는 이제사 조금은 지혜로워지기 시작하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일용할 소모품 외의 물건장만을 거의 안하고 산지는 이십년도 넘는다. 안하는 대신 버리지도 않아서 요번에 오랜만에 이사를 하려고 들춰내니 그 분량이 엄청났다. 내 생전에 다 읽을 것같지 않은 책들, 다시 입을 것같지 않은 옷들, 아름답지도 기능적이지도 않은 주제에 공간이나 많이 차지하는 옷장들은 필요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습관적으로 끼고 살던 것들이다. 그런 것들이왜 그렇게 많은지. 안버린 것도 결코 미덕이 아니었다. 진작 버릴 마음을 가졌더라면 남들이 갖다가 이용할 수도 있었으련만 지금은 아무도안거들떠볼 순전한 허접쓰레기였다. 내가 안치우면 나 죽은 후 내 자식들이 치울 생각을 하면 더 끔찍하다. 아아, 나는 너무 많이 가졌구나. 천당까지는 안바라지만 누구나 다 가는 저승문에 들어설 때도 생전에 아무 것도 안가진 자는 당당히 고개 들고 들어가고, 소유의 무게에 따라 꼬부랑 꼬부랑 허리 굽히지 않으면, 버러지처럼 기어 들어가야 할 것같다. U턴 지점을 이미 예전에 돌아 나의 시원이자 소실점인본향(本鄕)을 코앞에 두고서야 겨우 그게 보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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