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갑자기 잠이 들어. 그러니까 갑자기 잠이 드는 게 내 병이야. '갑자기'라는 시간. 그게 얼마나 무서운 시간인지 너는 모리겠지. 예측할 수도 없고 그래서 대비할 수도 없어. 그 시간은 만나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상황을 고려해주지 않아. 정말, 그저, 갑자기, 잠이 들어버리는 거야. 그런데 그 잠은 말야,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전혀 아프지 않아. 보는 것과 달리 무섭지도 않고. 아니, 저녁이 오고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 어둠 속에 누워 서서히 잠드는 정상적인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어. 이 잠은 완벽하거든.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 세계와는 전혀 다른 이상한 세계에 내 방이 있다고 치자. 이 잠은 그 방에 놓여 있는 가장 편안한 침대에서 잠자다 깨어나는 것과 같아. 그 세계는 이 세계와 완전히 다른 곳이야. 평소에 꾸는 꿈은 흐릿하고 불완전하잖아. 심지어 내가 꾸는 꿈인데도 내 마음대로 꿀 수 없지. 꿈은 내 것이 아니야. 늘 쫓기거나 불안해.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운 존재가 내 목에 칼을 겨누기도 하고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위협하기도 해. 높은 곳에서 떨어져 수없이 몸이 부서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끝없이 이별해야 해. 우리가 자면서 꾸는 꿈이란 게 결국 늘 겹핍되어 있고 조각나 있는 거야. 그래서 늘 두렵지. 그런데 내가 갑자기 잠드는 세계에서 꾸는 꿈은 달라. 난 한 번도 그 꿈에서 울어본 적 없어. 꿈속에서 만난 사람은 늘 나를 안아줬어. 그 세계는 믿을 수 없이 따뜻하고 너무도 고요해. 홀로 이 잠에서 깰 때면 아쉽고 외로워서 또다시 그 잠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정도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깨어날 때가 문제야. 그럴 때면 잠에서 깨는 것이 반대로 꿈 같아. 가장 더럽고 차가운 세상에 던져진 것 같은 악몽. 나는 늘 버려진 아이처럼 길 위에 누워 있어. 정신이 들 때마다 낯선 사람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가장 끔찍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해봐, 그 누구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고 그저 보고만 있다는 것. 제사에 쓰일 어린 짐승의 목덜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담소를 나누는 백정들이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인간을 조롱하며 숨이 멎길 기다리는 악마들 같아. 그때 내가 겪는 감정이란 뭐랄까, 벌거벗고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아니 그들이 나를 강제로 벌거벗겨 희롱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내 모든 틈과 구멍에 그들이 손가락을 집어넣고 활짝 벌려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나의 내부를 몽땅 들킨 것 같은 기분이 얼마나 끔찍하고 더러운 것인지 너는 죽어도 알 수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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