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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싸이와 사이/김정화

테오리아2 2013. 2. 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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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와 사이

김 정 화

 

 

 

         

 요건 tip~~ 수준 높은 쌤들을 위하여 오페라 버전^^

 

‘강남스타일’ 광풍이 지구를 흔들고 있다.

몸짱도 섹시함도 없는 가수 싸이가 넉살 좋은 얼굴로 뱃살을 흔들며 익살스레 말춤을 춘다. 근사한 턱시도를 빼입고 살찐 모차르트 같은 표정으로 춤을 추면, 비죽 붉어진 물살도 출렁출렁 리듬을 탄다.

 

빌보드 2위에 진입한 싸이의 인기는 지칠 줄 모른다. 런던 시장 보리스가 말춤 흉내를 내고, 팝의 여왕 마돈나는 열정적인 합동 공연을 했으며, 명문 옥스퍼드대학은 싸이에게 강연장 마이크를 쥐어 주었다. 에펠탑 인근 광장에서는 수만 명이 떼창을 부르며 단체 말춤을 추었는데, 마치 현대 옷을 입은 원시 부족들이 승전무를 추는 착시를 불러왔다. 유튜브 속의 말춤은 언어의 벽을 허물고 인종 간 틈을 좁혔다. 싸이라는 젊은 래퍼가 국가브랜드를 넘어 지구촌 코러스가 된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틈새를 타고 패러디도 인기몰이를 한다. 홍대스타일, 대구스타일, 차이나스타일에 이어 경찰스타일, 건맨스타일도 등장하더니 새내기 운전자는 자동차 뒷유리창에 초보스타일을 붙여 애교를 부린다. 지난번 미국 대통령 선거 때에는 부자들의 탐욕에 신랄한 풍자를 담은 롬니스타일이 인기를 누렸고, 한국 역시 특정 대선 후보의 스타일 패러디로 정치를 꼬집고 있다.

 

강남이 어떤 곳인가. 타워팰리스니 아이파크니 하는 대형 아파트가 우뚝 선 곳, 땅값 비싸고 외제차 많고 명품 학원이 즐비한 한국의 베벌리 힐스이기도 하다. 뮤직비디오에서 싸이는 자신을 강남스타일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에게는 ‘강남특별시민’이 풍기는 고상한 이미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강남스타일이 되려면 몸짱에다가 세련된 정장을 갖춰 입고 가만히 서 있어도 제비 같은 매너가 좌르르 흘러야 하건만 보면 볼수록 엉뚱하다. 대낮에 노골적으로 여자 엉덩이를 훑고, 사우나에서 유행가를 부르고, 놀이터의 회전목마를 타며, 관광버스에서 막춤을 추기도 한다. 천박하고 속되기까지 하다.

 

그를 보며 시청자들은 웃는다. 서민들의 억눌린 욕망을 풀어주기 때문이다. 탈선적이면서 탈속적이기도 하다. 상류문화를 은근히 조롱하고 비튼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다. 예술은 때로는 고상한 숭고미보다 우스꽝스러운 해학미를 가져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얼마 전의 일이다. 내가 속한 문학단체에서 가까운 도자기공원으로 가을 기행을 갔다. 공원 잔디밭에 야외무대가 마련되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햇살이 따가웠다. 볕이 눈부셨던 회원들은 하나둘씩 기념품으로 받은 검정 우산을 펼쳐 들고 앉았다. 뒤쪽에서 행사 사진을 찍던 나는 그 박쥐우산 때문에 사람들의 표정을 제대로 담을 수 없어 불만이었다.

 

그때였다. 악단의 음악이 울리자 평소 조신해 보이던 한 여류 시인이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말춤을 추기 시작했다. 젊지도 늙지도 않는 그녀는 싸이처럼 파워풀한 섹시 댄스를 선보이지는 않았지만 가락에 맞추어 제법 정확한 동작을 이어나갔다. 중년 여성의 코믹한 몸짓에 회원들의 착석 자세는 점점 부드러워져 갔다. 몸이 조금씩 좌우로 흔들렸다. 아마 그동안 TV를 보며 한 동작쯤은 배워뒀던 게 틀림없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사회자는 관중석을 향해 모두 함께 추기를 권했다. 그러자 참으로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젊은 수필가는 물론 박힌 돌같이 묵묵하던 희수의 노평론가까지 우산을 접고 일어나 기마자세로 흐느적흐느적 말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순간 잔디밭은 승마장으로 변했다. 문인들이 일제히 마부로 변신하여 합동 말발굽 소리를 내면서 말고삐를 후려치는 헛손질을 해대었다. 민머리, 더벅머리를 한 결코 젊지 않은 남성문인들이 “오빤 강남 스타일∼”이라 목청을 돋우면, 때를 기다렸다는 듯 생머리, 염색머리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여성문인들이 “갈 데까지 가 볼까∼”라며 응수를 했다. 정말 이대로 간다면 일심만능을 이뤄낼 기세였다. 그날의 희한스러운 풍경을 잔디밭 귀퉁이에서 반쯤 물든 단풍나무 서너 그루가 지켜보고 있었다.

 

춤은 우리를 즐겁게 해 준다. 십대부터 중년까지 어깨를 맞대었다. 세 살짜리 어린 조카가 30대와 50대의 부자간 공백을 채우고, 권위를 내린 사장이 말춤 퍼포먼스로 다가가면 직원들은 닫힌 마음을 풀기도 한다. 춤이라는 몸말이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말춤도 사람 사이를 메워나간다. 틈gap을 사이together로 바꾸는 춤이 진정한 싸이의 율동이다.

 

- 2012년 12월호 <수필과비평> 게재 

 

 

출처 : DIDA
글쓴이 : 김정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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