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山水畵) 뒤에서
견 일 영
산수화를 보면 어느 것이나 내 고향 같은 느낌이 든다. 나지막한 오두막집이 보이면 우리 집과 닮은 데가 있는가 찾아본다. 귀소본능인가. 고향에 대한 향수는 어쩔 수 없는가 보다.
내가 산수화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 데는 자연에 대한 고상한 취미가 아니라 그 뒤에 숨어있으면 세상의 온갖 두려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고(先考)께서도 산을 은신처로 삼으셨던지 호를 요산(樂山)이라 했다. 염량세태에 실망할 때마다 귀거래사를 읊으며 고향 시골로 내려가려고 하셨다. 그러나 한 번도 고향에서 며칠이라도 유하시는 걸 보지 못했고, 산속에 들어가 산수 속에 자적하시지도 않았다. 결국 산수화 뒤에 숨어 세속의 따가운 눈을 가리기만 하셨던 것이다.
나의 호도 솔뫼다. 산을 방패로 내가 옥심이 없고, 자연친화적이고, 늘 푸른 꿈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현수막만 내걸고 고향에 내려가 농사지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타인의 시선을 산수화에 묶어놓고 나는 그 뒤에 숨어 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 해 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정선(鄭敾)의 금강전도(金剛全圖)와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를 볼 기회가 있었다.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 했다. 정선의 그림은 사물을 단순하게 실경(實景)으로 재현하지 않고, 회화적 구성을 통해 경관에서 받은 정취를 감동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미학적 안목이나 이론에 궁한 나는 그 그림의 참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금강산의 사실적 모습과는 거리감이 있지만 나는 그 그림 속에서 금강산의 진면목이 숨어 있는 것 같아서 오래 그 그림을 눈여겨봤다.
진경산수화는 우리의 산천을 주자학적(朱子學的) 자연관과 접목시키고자 했던 문인 사대부들의 탐승유력(探勝遊歷) 풍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나 그 사상이 어떻게 금상산의 예각적인 바위 봉우리들을 날카로운 수직 주름으로 요약하여 표현했는지 잘 모르겠다. 진경산수화는 내가 그 뒤에 숨어 은자연(隱者然)하기에는 만만치 않았다.
나는 내 몸을 산수화로 감싸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모습을 남들이 정선의 금강전도처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난해한 경지로 높여 주었으면 하는 허욕을 부려 본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실경산수화 뒤에 숨어서 자연에 순명하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할 것 같다.
내가 젊었을 때는 내 모습이나 남의 모습을 볼 때, 있는 그대로 실경만 보았다. 나이 드니 진경에 눈을 뜨게 되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깊은 속뜻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진경(眞景)은 안 보이는 곳을 표출해내는 것이고, 보통 사람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형상화한 회화(繪畵)라고 본다. 불국사 아래 영지(影池)에는 석가탑이 비취지 않았다. 아사녀는 물속에 비친 유영탑을 보고 뛰어들었다. 그의 가슴에 비친 탑은 진경이었고, 그래서 그는 단순한 익사자가 되지 않고, 사랑의 화신이 된 것이다.
심리학자 중에는 자기 능력이나 태도나 주장을 가급적 감추고 드러내지 않으려는 심리적 경향을 요나 콤플렉스라고 한다. 나의 능력이나 태도나 주장을 가급적 감추고 드러내려 하지 않는 속마음은 어쩔 수 없는 무의식적 본능인 것 같다. 나는 절대로 도를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고, 모난 짓도 하지 않고, 모든 시비에 말려들지도 않는 중도(中道)만을 걸으려고 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처세술이 늘어났다.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이 되어 위장술을 쓰게 되었다. 적을 만들지 않아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꾀를 쓴다. 내가 바보가 되었을 때보다 잘난 체 했을 때 적의 시선은 날카롭게 나를 겨냥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연히 남들 앞에 나를 폄하하는 데 익숙해졌고, 바보 같은 모습으로 구차하지만 장수하고 싶었다.
나는 아마 태어날 때부터 요나 콤플렉스에 빠져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아무 욕심 없이 고향에 가서 산수나 즐기겠다고 하는데 누가 나를 욕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다시스로 도망하려던 요나처럼 바다에 빠지고, 큰 물고기에게 먹혀 결국 용서를 빌어야 할지 모른다.
도연명도 도피심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맞붙어 대들지 못하고, 은자(隱者)의 이름으로 방패를 삼아 자연의 변화에 따라 살아가려고 했지만 마음은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그는 군(郡)에서 감독관이 도착하기도 전에 향리소아(鄕里小兒)들에게 허리를 굽히기 싫어 고향 농촌으로 돌아가 유유자적했다.
내가 숨어 살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산수화 뒤다. 그러나 가엽게도 내 이상과는 달리 고향에는 내 몸 하나를 지탱할 방 한 칸도 없다. 귀원전거(歸園田居)하는 꿈도 내 머리 속에서 잠자고 있다. 어차피 나는 오류와 동거하고 있지 않은가. 아직도 나는 언젠가 전원에 돌아가 의고(擬古) 시나 지으며 살아가고 싶다.
불쌍하게도 나는 이런 도피심리, 공포심리, 우유부단성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 산수화의 뒤에서 과감하게 뛰쳐나와 자유롭게 이 세상을 활보할 수 있겠는가.
'그룹명 > 수필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토요에세이] 눈이 내리면 매화 볼 날 머지않다/최홍식 (0) | 2013.02.26 |
---|---|
[스크랩] 수필쓰기는 삶의 보물찾기 / 김우종 (0) | 2013.02.26 |
[스크랩] 운명의 함수 (0) | 2013.02.26 |
[스크랩] 연어/전태일문학상 우수상 (0) | 2013.02.26 |
[스크랩] [매일신문 문화칼럼] 잠시 멈춤-이상렬(2013년1월 4일자) (0) | 2013.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