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나는 염산이었을까-김근혜

테오리아2 2018. 4. 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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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염산이었을까

 

김근혜

  

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느 작가의 발표 글이 자신의 글과 비슷하다고 했다. 부랴부랴 지인의 글과 비교하며 읽어 보았다. 어느 부분에선가 읽었던 대목이 스쳤다.

 

지인은 그 작가와 만난 자리에서 얘기를 나눈 것 같다. 작가의 글과 자신의 글이 비슷한 것 같다고. 다행하게도 지인은 그날 밤 작가와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했다. 지인의 진심 어린 사과를 작가도 순순히 받아들인 것 같다. 작가를 미워했던 마음이 눈 녹듯 가라앉고 좋아지기 시작했다며 미안해했다.

 

지인의 새로운 면을 보았다.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았다면 관계가 더 나빠졌을지도 모른다. 일이란 벌리기는 쉬워도 수습하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자신의 잘못된 점을 바로 인정할 줄 아는 지인이 아름답게 보였다.

 

수업 갈 때면 지인과 카풀했는데 그 일을 치른 후, 이젠 각자 간다. 지인은 내가 기다리는 것이 미안하니 먼저 가라고 했다. 그 말뜻 속엔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부분도 있었다. 지인의 현명한 판단을 모른 척해 주었다.

 

그 작가와 나는 같이 공부한 적이 있다. 강사 뒷담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독박 쓰고부터는 눈인사 정도만 한다. 좋지 않은 감정이 치우쳐 선을 넘고 말았던 것 같다.

 

사람은 둘 이상 모이면 남의 흉을 보게 된다. 장점을 보기보다는 단점 보는 것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뒷말은 그 자리에서 끝내는 게 좋을 성싶다. 그것을 가지고 이리저리 옮겨서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 반성을 많이 했다. 남의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며 내가 가진 편견이 다른 사람에게 동화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동조화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방에 여러 개의 괘종시계를 두면 시계추가 똑같이 움직인다. 가장 강한 추가 다른 추들을 따라오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도 같이 있다 보면 닮아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지인도 잠시지만 나와 같이 다니면서 동조 효과가 나타난 건 아닐까. 조금이라도 나이를 더 먹은 사람이 좋은 본을 보이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

 

넘치는 사람한테는 시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잘난 사람한테는 우군보다 적군이 많은 게 아닐까. 사람들은 타인을 인정하지 못하는 병에 걸려 있다. 타인의 장점을 진심으로 칭찬해 주고 바라봐 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보다 능력이 있으면 끌어내려야 직성이 풀린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을까. 작가에 대해 좋지 않았던 감정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것 같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도 공을 세운 것이 도리어 화가 되어 감옥살이한 경우도 허다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미움 받지 않으려고 마냥 어수룩하게 행동할 수도 없다. 어떤 이는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 지혜라고 하지만 이래도 저래도 사람들의 입은 방아를 찧는다. 잘나도 상처받고 못나도 멍이 든다.

 

그중에서 편견이라는 놈이 시야를 흐리게 할 때가 많다.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로 특정인을 평가하고 저울질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한다. 나쁜 것은 빨리 전염되는 속성이 있다. 당시에는 모르기 때문에 실수하고 일을 그르친다. 사람이니까 실수한다. 다만 잘못에 대해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느 책에선가 염소(Cl)가 나트륨(Na)을 만나면 소금(NaCl)이 되지만 수소(H)를 만나면 염산(HCl)이 된다고 한다. 사람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염산이 되기도 하고 소금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 절실히 와 닿는 5월 어느 날이었다.

 

나는 염산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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