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우산-김근혜

테오리아2 2018. 4. 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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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김근혜

 

울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할머니 몇 분이 우산을 쓰고 간다. 그 옆에 어정쩡하게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따라가는 또 한 할머니가 있다. 허리까지 굽어 잰걸음도 할 수 없는 처지이다. 갑자기 내린 비로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나 보다. 함께 걷는 사람들은 우산 씌워 줄 생각은 없는지 걸음만 재촉한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너는 우산도 없느냐고 한마디 던진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감정이 섞인 말투다. 노인정에 같이 있다가 나온 것 같은데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다. 보기가 안쓰러워서 빨리 할머니 옆으로 다가갔다. 우산을 씌워드릴까 하다가 마음을 더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떨어져서 걸었다.

 

우산도 없느냐는 소리가 귀에서 떠나질 않는다. 흘려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말이 자식도 없느냐로 들렸다. 아니 자식이라고 다 같은 자식이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르신들이 노인정에 둘러앉아 할 얘기가 무엇인가. 자식 자랑하거나 손주 자랑으로 하루를 보내지 않는가. 노인정에서도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의 패는 갈리지 않겠는가.

 

큰소리치는 할머니는 당당해 보인다. 체구도 좋고 허리도 꼿꼿하다. 옷도 때깔이 좋은 것으로 보아 넉넉한 우산을 마련하고 있는 모양이다. 못 들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허적허적 걷는 할머니가 슬퍼 보인다. 살아온 세월만으로도 힘겨웠을 텐데 타인에게조차 서러움을 당하고 있다.

 

그 광경을 보노라니 어머니들의 삶이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우산만 되어준 세월이었지 당신을 위해 우산을 쓴 적이 있었을까. 삶이 힘에 부쳐도 자식이 있었기에 절망치 않았을 어머니들의 삶. 어머니에게 자식은 잘나나 못나나 사랑하는 분신이다. 그래서 비난마저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할머니는 자식을 위해 산 세월이었지만 정작 할머니의 우산이 되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할머니의 가슴까지 비가 적실 것만 같아 애가 끓었다.

 

가끔 시장가는 길에 그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는 대문 밖에 쭈그리고 앉아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을 번갈아 보며 시선을 쫓는다. 이젠 노인정도 가지 않는가 보다.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 지나가면 반가움에 말을 건네곤 하는데 아무도 대꾸를 해주지 않는다. 말동무를 해줄까 망설이다가 못 본 체하고 말았다. 사람이 그리웠을 무게가 느껴져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서러운 눈빛이 오래도록 골목길에 맴돈다. 할머니의 눈빛이 남아 있는 골목길을 갈 수 없어서 다른 길로 돌아서 다닌다. 그 할머니의 눈빛 속에 어머니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어린아이에게 우산을 받쳐주고 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눈에 띈다. 빗방울이 튈까 봐 상체를 아이 옆으로 바짝 기울였다. 바람 불면 넘어질까, 비가 오면 맞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우리들의 어머니 상이다. 그 할머니도 자식을 위해 온몸으로 우산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먼 훗날 저 할머니같이 버림받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누구도 예외는 될 수 없을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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