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욱수천의 봄-김근혜

테오리아2 2018. 4. 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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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수천의 봄

     김근혜

 

목 오르는 봄, 사람들은 느린 걸음으로 마을을 떠났다. 노을만이 지붕 위에 머물다 산을 넘었다. 그들은 울지 않았다. 개울을 사이에 두고 두 시대가 공존하고 있다. 건너편에는 다 쓰러져 가는 슬레이트집 몇 채가 힘에 겨운 듯 버티고 있고 맞은 편 아파트촌에는 고급 승용차가 수시로 드나든다.

 

욱수천 개발 공사로 몇몇 집은 이사를 하였는지 헐리고 없다. 보다 못한 빈자의 뜰엔 컨테이너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소 울음만 귀에서 맴돌고 낡은 외양간엔 늙은 트럭 한 대가 우두커니 서 있다. 소는 사람과 더불어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한 존재다. 살림살이 밑천이고 만년 머슴으로 집안의 장남 격인 소를 마지못해 팔았을 주인의 마음은 어떠할까.

 

놀라운 일이다. 나무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톱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도구를 상상할 것이지만 사람의 말소리, 아우성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나무 주변을 둘러싸고 고함치면 나무의 영혼이 빠져나가서 결국엔 쓰러진다고 한다. 진실로 사랑하면 말을 아낀다고 하는데 우린 소를 품을 마음조차 내지 못한 건 아닐까. 소시민의 가난한 꿈마저 입에서 나오는 독한 기운으로 돌을 깨듯 깨버리고 말았다.

 

소가 있던 집은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지붕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비닐과 폐타이어를 덮고 있다. 무릎 연골이 다 닳아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보는 것 같다. 순한 소 주인은 집단 이기주의에 말없음표로 마침표를 찍은 건 아닐까. 굳게 닫힌 문에서 짙은 외로움이 일렁인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는 도둑고양이처럼 뒤꿈치를 들게 된다.

 

살다 보면 누군가를 위해 불 밝힐 때보다 내 삶의 영지를 넓히기 위해 욕심이 앞설 때가 더 많다. 삶의 방식 차이가 한 우주 공간에서도 이분화된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심성은 메마르고 거칠어졌다. 서로 뒤섞이기보다 개인적인 성향으로 변했다. 심지어는 피붙이조차 살닿는 것을 꺼려한다.

 

집단 이기심은 멈출 수 없는 수레바퀴요, 미류(彌留)하는 감기이다. 함께 울어 줄 가슴보다 내 행복이 우선이다. 이기심에 감염되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사는 건 아닐까. 자꾸만 사람 냄새가 사라진다. 그들을 외면하고 나는 행복한가. 구차한 변명이라도 늘어놓아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이해득실을 따지는 게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이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조나스 솔크의 일화는 각박한 세상에 감동을 준다.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의사로서 특허를 내 억만장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 길을 버리고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백신을 무료로 공개했다. 아름다운 포기였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뺄셈해 본 적이 있었던가. 자신의 몫에 연연하여 나눔이란 계산법은 잊고 살지 않았는지 내 마음 그릇을 측량해 본다. 그동안 이웃에게 참 무심했다.

 

욱수천에 봄이 왔다. 황량하던 개천에 활기가 넘친다. 잘 닦여진 산책로에는 유모차를 탄 아기에서부터 반려동물까지 북적이고 있다. 즐기고 있다. 봄놀이 하느라 바쁘다. 산책하느라 노년에 이르기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있다. 아이들도 물을 보니 즐거운가 보다. 돌멩이로 댐 쌓는 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생기다. 어르신들도 정자에 앉아 봄볕을 쬐고 있다.

 

산책로가 끊어진 곳에는 징검다리가 있다. 건너편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다. 돌 하나하나를 건널 때마다 관심 두지 않았던 앞 동네가 다가온다. 그저 무심했던 이웃이었다. 바로 앞에 있는 것만 보였고 멀리 보려는 마음의 여유조차 없이 살았다. 돌다리 앞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저쪽 편에선 먼저 건너오길 기다리고 이쪽 편에서도 질세라 양보의 눈짓을 보낸다. 이런 실랑이는 클라리넷 협주곡처럼 따스하다.

 

나만 보지 말고 내 옆, 내 앞의 이웃도 살피며 살라고 이 징검다리를 놓은 건 아닐까. 이방인으로 살았던 높은 턱을 이 다리가 낮춰 놓았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이 징검다리를 통통(通通) 다리라고 이름 붙여 본다.

 

욱수천에도 봄은 왔는데 순한 소는 어디에서 이 봄을 맞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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