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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 봉숭아/이복희

9월이 저물 무렵, 유난히 눈에 밟히는 꽃이 있다. 봉숭아다. 담장 밑, 공원 한 귀퉁이, 동네 길섶에서 웃자라 쇠어버린 봉숭아. 다른 어떤 풀이나 꽃보다도 시든 봉숭아만큼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없다. 여름내 지천으로 피어 있어도 마음 없이 바라보던 꽃, 싱싱한 선홍빛 꽃잎이 어서 꽃물을 들이라고 유혹할 때도 건성 스쳐 지났다. 손톱에 물들이던 여름밤의 설렘을 잠깐 떠올려 보지만 먼 유년의 뜰에 두고 온 꽃일 뿐이다. 하지만 구월에 만나는 봉숭아는 달랐다. 어느새 굵어진 마디와 억센 줄기, 그리고 빛바랜 꽃송이가 비로소 마음에 안겨오는 것이다. 이미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고 여름 한철 맛본 꽃의 영화도 사라진, 철지난 봉숭아가 어린 날 나의 유치했던 객기를 떠올리게 해서다. 미처 시들어버리기도 전에 뽑혀졌..

그런 일이 있었다/강철수

20여 년 전 여의도 S문화재단 인문학 강좌의 학생일 때가 있었다. 대부분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노년의 학생들이었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의는 대단해서 교실은 언제나 만원이었다. 한 학기가 끝나면 지도교수를 모시고 현장답사 여행을 떠날 때가 많았다. 입회 5년 차에는 일본 근현대사를 강의한 H 교수를 모시고 일본 규슈(九州)지방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 발자취를 둘러보고 왔다. 이듬해인 그해에는 과별 답사 여행은 모두 보류되고 주야간 학생 전원이 국내 답사 여행을 간다고 했다. 마침 그 학기에는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경을 공부하고 있어서 학기가 끝나면 사우디아라비아로 답사 여행을 가지 않을까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곳에 가면 우리 교실을 친히 찾아와 두툼한 한글판 코란경 한 권씩을 선물로 준 이슬람 사업가의 ..

빨래를 널며/왕린

길을 가다가도 빨래가 널린 것을 보면 공연히 기분이 좋다. 빨랫줄에 하얀 와이셔츠가 걸려 있으면 더욱 그렇다. 결혼하고 아기를 기다리던 때, 우리는 이층집 바깥 베란다가 유난히 넓은 집에 세 들어 살았다. 아래층에는 부모를 모시고 여섯 살 된 ‘현이’라는 여자아이를 키우는 주인 부부가 살았는데, 그들은 볕 잘 드는 2층에 올라와 빨래를 널어놓고 가곤 했다. 색색의 옷이 널리면 화분 몇 개가 놓였을 뿐인 그곳 풍경이 달라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들이 넣어놓은 빨래를 보면 성이 차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엄마표 빨래줄에 길든 내 눈에 대충 걸쳐 놓은 모양새가 마음에 걸렸다. 남의 옷에 손을 대는 것이 찜찜했지만, 탈탈 털어 주름을 펴고 중심을 맞춰서 다시 널었다. 양말들도 나란히 짝을 찾아 주었다. 부서지..

콩나물국을 먹다가 /최운

큰아들과 저녁상을 받았다. 콩나물국에서 더운 김이 피어오른다. 고춧가루를 듬뿍 탔다. 코를 훌쩍거리며 국물을 떠 마시고 건더기도 어적어적 씹어 삼켰다. 요 며칠 나는 감기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서울에 가면, 거기서는 어떤 음식을 먹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한식은 아예 구경도 못하리라는 전제가 생략된 질문이다. 하긴 나도 아르헨티나에서 끼니 때마다 밥과 김치를 먹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이민을 왔다. 감기에 콩나물국을 일부러 끓여 먹을 정도라면 못 미더워 할 사람도 꽤나 많을 것 같다. “아, 시원하다.” 얼른 고개를 들어 아들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아비 앞에서 본데없구나 싶기도 했지만, 그 생각은 잠깐이고 어쩌면 그렇게도 제 할아버지 어투를 꼭 뺐을까에 정신이 몽땅 몰수를 당했기 때문이다. 아버..

창을 열다/김영희

얼마 전부터 저녁 식사를 마치면 주변을 산책한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없고 포근한 날이라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은 집이 곳곳에 눈에 띈다. 걷다가 창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를 의도치 않게 듣기도 한다. 이웃의 삶 일부가 열린 창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한적한 길을 걷다 창문으로 불그림자가 얼비치면 그 앞에 잠시 멈추기도 한다. 오늘도 그녀가 사는 2층 집은 불빛이 아늑하다. 거실에 켜진 주광과 백색 전구의 조화는 일터에서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집의 이상향처럼 느껴진다. 산보를 하다 그녀의 집 근처에 이르면 습관처럼 고개가 들려진다. 열린 창밖으로 들려오는 가족들의 웃음소리, 리코더 가락에 맞추어 부르는 아이의 노래를 나도 모르게 따라 흥얼거리며 발걸음이 더뎌진다. 가족들의 경쾌한 웃음은 하루를 마감할 ..

기차는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정성화

어릴 적 내가 살던 곳은 경부선 기차가 지나가는 시골이었다. 저녁밥을 먹은 뒤 심심하면 나는 강둑에 앉아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는 언제나 어두운 들녘의 한 쪽을 들치고 씩씩하게 달려왔다. 기차는 아름다웠다. 캄캄한 밤하늘에 소리 없이 풀어지던 한 무더기의 증기도 아름다웠고, 네모난 차창에서 새오나온 불빛이 만드는 금빛 띠도 무척 아름다웠다. 그 들녘에 이르러 울리던 기적 소리는, 기차가 길게 내쉬는 숨비소리로 들렸다. 나는 그때 기차가 어쩌면 한 마리의 순한 짐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는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그리움을 내 가슴속에 주르륵, 두 줄로 박아놓고 갔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이라 기차가 오가는 시각이 시계 역할을 했다. 어머니는 내 바로 아래 동생을 ..

마당/김해남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가자 푸석하던 흙마당이 촉촉하게 젖는다. 한 구석에는 늘 가릉대는 늙은 개의 웅크린 모습과 찌그러진 양재기에 불어 터진 밥알, 그리고 헛간 담벼락에 바짝 붙여 매어 놓은 낡은 멍석, 장독대 위에 내려앉은 햇살과 수돗가 빈 바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만 달그락거린다. 비 긋고 지나간 마당에 잡초가 파랗다. 거름 한 줌 뿌려 준 적 없고, 갈증날 때 물 한 모금 먹인 적 없어도 어쩜 이리 잘 자라는지, 내 손에 걸리기만 하면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사정없이 모가지를 비틀어 내팽개쳐도 녀석들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비만 내리면 고개를 바짝 쳐든다. 잡초를 뽑아내고 비질을 한다. 바지랑대에 미끄러지는 한낮의 햇살이 오지다. 오똑하니 앉아 남상거리던 콩새 한 마리가 비질 소리를 듣고 포르르 마당으..

탱고, 그 관능의 쓸쓸함에 대하여/맹난자

봄이 이울자 성급한 덩굴장미가 여름을 깨운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다가 담장 밑에 곱게 피어난 장미 꽃송이와 눈이 마주쳤다. 투명한 이슬방울, 가슴이 뛴다. 그리고는 알 수 없는 통증이 한 줄기 바람처럼 지나가는 것이다. 6월의 훈향이 슬며시 다가와 관능을 깨운다. 닫혔던 내부로부터의 어떤 확산감을 느끼게 되곤 하던 것도 그러고 보면 매양 그 무렵이었다. 약속한 대로 나는 '예술의 전당' 앞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뮤지컬 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내가 탱고를 보자고 제안했을 때, 그는 순순히 동의해 주었다. 순순히라는 말 속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 담겨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흔히 탱고를 관능과 외설, 즉 단정치 못한 어떤 것과 연관지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관능과 외설에 대한 사람..

별을 접는 여인 /손광성

몇 해 전 일이다. 나는 어느 조그만 변두리 중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그때 내 자리는 어떤 여선생님의 건너편이었는데, 우리 사이에는 낡은 철제 책상이 두 개, 그리고 그 경계선쯤 되는 곳에 크리스털 꽃병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흰 편이었고 치열은 아주 가지런했다. 소리 없이 웃는 모습이 소녀처럼 해사했다. 그 크리스털 꽃병 같았다. 나는 가끔 꽃병 너머로 그녀쪽을 건너다보았다. 그 때마다 움직이고 있는 그녀의 희고 가냘픈 손이 나의 시선으로 들어오곤 했다. 색종이로 별을 접고 있었다. 공책 한 칸 넓이만큼씩 잘라 놓은 색종이를 오각형이 되게 요리조리 접었다. 접기가 끝나면 손톱끝으로 다섯 개의 귀를 살리면서 허리 부분을 살작 눌러 주면 금세 살아 통통한 예쁜 별이 태어나는 것이었다. 어..

태그매치(Tag match) /김단

해가 중천에 떴는데 기척이 없다. 빼꼼히 방문을 열고 안의 동태를 재빨리 살핀다. 이불이 규칙적으로 들썩거린다. 휴~ 다행이다. 살아 있네! 다음은 무관심이다. 무얼 하든, 어딜 가든, 밤늦게라도 잊지 않고 집에만 들어오면 된다. 난 아침형인간이고 그는 올빼미족이라 아침은 각자 해결이다. 난 내 방에서 소리로 그의 행동반경을 감지한다. 저녁이 되면 말없이 서로의 얼굴은 보지 않고 밥 먹는 일에만 전력을 다한다. 밥에 돌이라도 들어갔는지, 반찬에 머리카락이 있는지, 눈에 불을 켜며. 그는 문간방에서, 난 거실을 독차지하고 TV를 본다. 어차피 선호하는 채널이 달라 같이 볼 수 없다. 예전엔 보고 싶지 않은 프로도 무심히 정답게 같이 보았지만, 거실 스탠드를 켜놓고 내가 안방으로 들어가면 그는 문간방에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