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저물 무렵, 유난히 눈에 밟히는 꽃이 있다. 봉숭아다. 담장 밑, 공원 한 귀퉁이, 동네 길섶에서 웃자라 쇠어버린 봉숭아. 다른 어떤 풀이나 꽃보다도 시든 봉숭아만큼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없다. 여름내 지천으로 피어 있어도 마음 없이 바라보던 꽃, 싱싱한 선홍빛 꽃잎이 어서 꽃물을 들이라고 유혹할 때도 건성 스쳐 지났다. 손톱에 물들이던 여름밤의 설렘을 잠깐 떠올려 보지만 먼 유년의 뜰에 두고 온 꽃일 뿐이다. 하지만 구월에 만나는 봉숭아는 달랐다. 어느새 굵어진 마디와 억센 줄기, 그리고 빛바랜 꽃송이가 비로소 마음에 안겨오는 것이다. 이미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고 여름 한철 맛본 꽃의 영화도 사라진, 철지난 봉숭아가 어린 날 나의 유치했던 객기를 떠올리게 해서다. 미처 시들어버리기도 전에 뽑혀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