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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 Y를 위하여 -최승자

테오리아2 2015. 12. 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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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를 위하여

                                               최승자

 

 

너는 날 버렸지,
이젠 헤어지자고
너는 날 버렸지,
산 속에서 바닷가에서
나는 날 버렸지

 

수술대 위에 다리를 벌리고 누웠을 때
시멘트 지붕을 뚫고 하늘이 보이고
날아가는 새들의 폐벽에 가득찬 공기도 보였어

 

하나 둘 셋 넷 다섯도 못 넘기고
지붕도 하늘도 새도 보이잖고
그러나 난 죽으면서 보았어
나와 내 아이가 이 도시의 시궁창 속으로 시궁창 속으로
세월의 자궁 속으로 한없이 흘러가던 것을


그때부터야
나는 이 지상에 한 무덤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고
나의 아이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나쁜놈, 난 널 죽여 버리고 말 거야

 

널 내 속에서 다시 낳고야 말거야
내 아이는 드센 바람에 불려 지상에 떨어지면
내 무덤 속에서 몇 달간 따스하게 지내다
또다시 떠나가지 저 차가운 하늘 바다로,
올챙이꼬리 같은 지느러미를 달고
오 개새끼
못 잊어!

 

 - 시는 치부로부터 온다. 치부에서 치부까지의 시. 꽃이 아니고 꽃 같은 것들도 아니고, 꽃이 진 자리, 떨어져 말라 스러져가는 꽃잎, 그 뒤에 맺혔다 떨어지는 낙과....... 시는 이런 데서 온다. '널 만나서 행복했어.' 라는 유행가가 드물듯이, 즐거운 자리에서의 시는 춤과 환호와 박수에게 밀린다. 슬픔의 자리에서조차 시는 가장 마지막의 것이지 처음의 것은 아니다. 울고 비명 지르고 다 삭힌 다음에 남은 울혈처럼 끈적거리고 어둡고 칙칙하다.

  시는 자신을 반만 들켜도 되니까 고백에 가깝고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래서 시는 우선 자기를 위로하는 쟝르에 가깝다. 거기 구석에서 여기의 일반론적인 객관의 자리까지 밀려오는 것은 여기 속한 우리가 또 그쯤의 아픈 상처와 연민을 품고 삭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몇은 이러저러한 반론을 펼쳐내겠지만, 이러저러한 반론 속의 시들이 또 시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는 까닭은 반론을 펼치는 자의 슬픔이 또 그런 색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가 희고보니 알겠다. 세상의 모든 싸움은 왜 이다지도 사랑과 똑같은가. 뒤집어서 말하자.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당신과 가장 많이 싸워야 하는 사람이다. 당신의 시는 당신과 얼마나 오랜 연인인가.   -일전에 올렸던 시지만 한 번 더 던져 놓습니다.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청개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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