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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이은규

테오리아2 2015. 12. 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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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이은규

 

 

  아침 꽃을 저녁에 주울 수 있을까

 

  왜 향기는 한 순간 절정인지

  아침에 떨어진 꽃잎을 저녁에 함께 줍는 일

  그러나 우리는 같은 시간에 머물지 않고

 

  떠도는 발자국 하나

  지구의 원점,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날 때

  흩어진 별들의 고개 기울어지다

 

  알고 있니 천문대의 자오선을 경계로 하루쯤 시차가 난다는 걸, 그도 괜찮지만 착란은 날짜

변경선이 지나는 나라의 일, 언제나 거짓말 같은 새벽과 짙은 농담의 밤이 찾아오는 곳

 

  감은 눈동자 위로 반짝이는 열(熱)

  이별은 이 별에서 헤어지는 중입니다

  새의 깃도 바람에 헤어지는 중입니다

 

  기억하자 날짜변경선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넘으면 하루 늦게, 반대의 경우 하루가 빨라진다

는 걸, 착란의 시간과 변하지 않을 운명에 대한 예감은 잠시 접어두기

 

  문득 망설이던 긴 꼬리별

  역일(曆日)의 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순간

 

  때를 달리한 연인은

  아침 꽃을 저녁에 주울 수 없고

  우리는 너와 나로 파자(破字)되어 단출할 뿐이다

 

  이제 잊는 것으로 기다릴까

  향기로운 새의 부리가 전해줄 꽃의 절정

  한 잎은 이쪽으로,

  한 잎은 저쪽으로

 

        *루쉰의 산문 제목에서 빌려옴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물크러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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